↑ 윤석열 검찰 총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신년 다짐회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
지금 하는 일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왔지만 가끔 '이 일을 한번 해 보았으면' 할 때도 있었다. 가장 많이 떠올린 직업은 검사. 기자로 겪어본 이 사회에는 '정말 나쁜 놈'들이 늘 있었다. 룸메이트가 제주지검에서 처리했을 그런 잡범들말고 거악들 말이다. 법이란 그물은 묘해서 작은 물고기일수록 빠져나가기가 어렵고 큰 고기는 숭숭 빠져나간다. 법과 헌법을 크게 농락할수록, 우리 공동체에 끼치는 위해 정도가 클 수록 법의 그물로부터 멀어진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한편으론 '검사들은 뭐하나' 책망하고 한편으론 '내가 검사였다면 최소 큰 놈 몇몇은 제대로 손봤을텐데'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 윤석열 검찰의 활약상을 접하면서 '검사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고 주제를 깨닫게 됐다.
검사장 인사가 나온 지난 8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좌천되는 대검 간부들에게 "모두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이 내게는 '우리는 검사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검사는 법적 사실과 헌법적 가치로 승부하는 직업이다. 검사의 힘은 오직 사실과 헌법에서 나온다. 윤석열은 정의감과 배짱이 두둑해 보이는데 그런 검찰총장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를 기존 총장상과 결정적으로 달라보이게 하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한 '비정무적' 성격이다. 그가 사안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나 야, 권력유무,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나쁜 짓 했나, 안했나'로 보인다. 일단 그 기준이 서면 좌고우면이 없다. 그 결과 박근혜 청와대와 싸웠고 지금은 문재인 청와대와 등졌다. 윤석열은 검사가 비정무적일때 힘이 세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윤석열 취임후 지난 6개월은 정치로부터의 '검찰권 독립운동'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그 독립운동이 지금 진압되기 일보 직전이다. 청와대와 법무부는 윤석열 수족이 잘려난 이번 인사 파동을 '윤석열 항명 사태'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감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몇개월후엔 사실상 검찰을 감찰·감독하는 공수처가 출범한다. 조만간 있을 중간간부 인사에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조국 일가 비리 사건,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실무자들이 교체되면 수사는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검찰독립의 꿈은 '6개월 천하'로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윤 총장은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진행중인 수사는 마무리짓고 떠날 생각인 모양이다.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윤 총장의 비극적 용퇴로 사태는 종결될 것같다. 그래도 그는 이미 대단한 일을 했다. 그는 검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었다. 검찰권이 정치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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