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 A군이 전학 간 인천 모 중학교 교문 앞에서 학부모들이 지난 14일 탄원 및 서명운동을 벌였다. 학부모들은 `성폭행가해자의 되받기 식 강제전학 취소와 정당한 처벌 및 교정교육판결`을 요구했다. [사진 = 이상현 인턴기자] |
최근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각종 성범죄 사건의 가해자들이다. n번방 '와치맨' 전 모씨(38)를 제외하면 30대 이상이 없다.
이들의 범죄는 대개 비뚤어진 성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유명무실한 공교육 과정에서의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교육 표준안' 있어도 현장은 제각각
초1부터 고3까지 12년에 걸친 공교육 과정에서 성교육이 이뤄지지만 문제는 학교마다 가르치는 성교육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가 지난 2015년 발간한 '성교육 표준안'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학교가 지도해야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각 학교가 이를 참고해 일부 내용을 선택하거나, 학교 상황에 맞게 정리해 편성안을 내는 방식으로 성교육을 기획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 교과 특성에 맞게 다루는 내용의 양이나 깊이에 있어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학생들의 나이·수준·사회 문화적 지역 특수성 등에 따라서도 내용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성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칠지 통일하는 단계부터 어려운 셈이다.
그런가 하면 해당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도 문제다.
일반 교과목 시간에 부족한 내용은 '성교육 특강' 형태로 보완하게 되는데 학교마다 여건이 달라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재학생 수가 너무 많으면 전담 교사가 일일이 수업으로 진행하기 어렵고, 학교가 너무 작아도 교직원 인력 부족으로 전담 교사를 지정하기 어려운 식이다.
학교마다 상황과 여건이 달라 교육 방식이나 형태를 하나로 통일하기 어려워 성교육 표준안도 강제성을 띄기보다 권고안 역할만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강당 등에 대규모 학생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1대다 집단교육이나 방송 교육 등이 가장 흔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여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성교육을 진행하는데 가장 용이하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성교육 표준안을 전달하면서 교육 방식에 대한 유의사항도 안내하고 있다"라며 "학교마다 여건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교육 형태도 등장할 수밖에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표준안이 있어도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가르칠지는 과목마다 다루는 내용과 학교 여건에 달린 셈이다.
또 성교육을 누가 진행할지도 문제다.
학교마다 성교육 전담 교사를 임의로 지정하고 관련 업무를 총괄하도록 임명하지만, 누구를 임명할지는 학교장 재량이다. 일반 교사들은 각자가 전담하는 과목에만 특화되어 있고, 보건 교사들도 성교육 전문가 양성 과정을 필수로 거치지는 않는다. 일반 교과목 수업과 특강 모두 외부 초빙 강사가 아닌 이상 전문가가 성교육을 진행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현장에서는 보건 교사, 또는 계약직 (교사)에게 많이 떠넘기는 편"이라며 "(일반 교사들은) 연차가 쌓이면 학생부장, 진학지도부장 등을 맡으니 (성교육은) 어떻게든 떠넘기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다 절차대로, 적법하게"…"현행 성교육 통째로 바꿔야"
앞서 지난 2019년 12월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는 A군(15) 등 2명이 같은 학교에 다니던 여중생에게 술을 먹인 뒤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진 바 있다. 당초 A군 등이 강제전학 조처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으나,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A군 등이 2005년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 사이에서는 학교 내 성교육 실태를 점검하라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들이 다녔던 학교는 이에 대해 성교육과, 사건 발생 후 후속 조치를 모두 "절차대로 시행했다"는 입장을 냈다.
해당 학교 교감은 지난 1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늘 아이들에게 가정통신문이나 E알리미로 성교육 및 피해 예방 교육 등을 하고 있고, 학년별 집합교육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의 강제 전학 처분에 대해서는 "절차대로, 신고 접수부터 시작해서 교육부에서 내려온 지침 그대로 적법하게 다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학교의 성교육 방침과 관련해 "1년에 아이들에게 주어진 교육 시간이 있어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세부적인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같은 날 A군이 전학 간 중학교 교문 앞에서는 학부모들이 '성폭력 가해자의 되받기 식 강제전학 취소와 정당한 처벌 및 교정교육판결을 위한 탄원'을 진행했다.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A군이) 전학 오고 나서야 전학 사실을 알았다"며 "교육부와 인천시교육청이 아무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이라며 "(탄원서에) 지금까지 1만4542명이 서명했다"고 설명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주민도 "내 딸이 (A군이 전학 온) 학교에 다닌다"며 "학교 성교육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요새 나오는 사건들이 어디 보통 일인가? 현행 성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라며 언성을 높였다.
교육 당국의 기존 성교육 방식에 비판적인 이들은 학부모 등 일반 시민뿐만이 아니다.
의학계와 법조계 등 다방면의 성 전문가 700여 명으로 구성된 대한성학회도 지난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에 성교육과 성 정책의 변화를 요구했다.
학회 측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현실적 성교육과 성 담론을 억제하는 정책의 결과"라며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해서 다양한 성폭력의 현실을 적극 조사해서 이를 토대로 성범죄 대책을 수립하고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시·공립 성교육 전문기관들도 대체로 기존 성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탁틴내일 청소년성문화센터 관계자는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내용은 보통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했다"면서 "최근에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초등학교 고학년은 물론 저학년에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강원도의 한 사설 성교육 전문기관
[디지털뉴스국 이상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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