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그는 '서울의 예수'라는 시를 썼다. 그가 불러드린 예수는 그러나 고통의 삶을 살았다.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었고 눈물의 빈대떡을 먹으며 소주잔을 나누거나 모래를 씹으며 잠이 들었다.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정호승의 나이는 갓 서른. 지금 그 나이를 사는 대한민국 청춘들도 예수를 찾고 있다. 정호승이 찾았던 예수가 독재를 종식시켜줄 민주적 지도자였다면 지금 청춘이 찾고 있는 예수는 다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억울하게 차별받지 않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편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그런 지도자. 정호승은 시를 통해 예수란 이상을 쫓았지만 지금의 청춘은 '영끌'과 '빚투'를 통해 예수란 현실을 실현하려고 한다.
1979년 청춘은 2020년 청춘이 부럽기만 하다. 그들은 모두 한손에 스마트폰을 들었고 하루에 한번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 부모 잘 만나 웬만큼 사는 청춘이나 안정된 직장 없이 하루하루 버티는 청춘이나 이 지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줬던 슬픈 기억 한 편쯤 간직한 1979년 청춘들의 부러움은 그래서 나름 타당하다.
2020 청춘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잘 살고 못 사는, 잘 먹고 못 먹는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소통은 그 즉시 단절된다. 그들의 슬픔, 그들의 분노는 다르다. 그들이 예수를 찾는 이유는 1979년과는 판이하다. 100에 99명은 사다리 걷어차인 인생들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한다는 점. 이게 지금 청춘의 코드다.
1979년 청춘은 적은 월급이지만 한푼 두푼 모아 결혼해 다세대 주택 월세방에 살다가 전세로 갈아타고 운 좋으면 자신 만의 아파트에 살 수 있었다. 강남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대부분은 자산 가격상승이란 보너스도 챙겼다. 그 기반으로 낳고 기른 그들의 아들딸들, 비록 월급은 40년 전에 비해 수십 배 많아진 2020 청춘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돈 모아 1979년 청춘이 밟았던 궤도에 진입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일시 도약을 꿈꾼다. 진도 생략. 처음부터 고급반으로 직행한다. 영끌과 빚투는 1979 청춘을 향한 2020 청춘들의 불신이 표출되는 과정이고 결과이다.
"직장 생활 열심히 하다 보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거야", "착실하게 적금 붓다 보면 나중에 목돈이 생겨", "지금 집 없으면 어때, 월세 살다가 돈 모아 집 사면 돼." 1979년은 위로 아닌 위로를 하지만 2020년에겐 고문 아닌 고문이다. 2020은 이런 개념 없는 우악스러움을 그냥 점잖게 '꼰대'라고 응수한다. 그들의 웃음에서 아픔을 찾지 못한다면 대화는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낫다. 공감능력 제로의 불쌍한 1979년 청춘들이다.
1979년 청춘들에게 양극화는 부와 소득의 추상적 문제였다면 2020년 청춘들의 양극화는 너무나도 구체적이다. 아파트의 풀(Full)소유와 무소유로 분리한다. 요즘 혼기에 접어든 처자들의 신랑 1순위는 아이로니하게도 집 가진 남자다. 1979년 청춘에게 주식은 건전한 투자 또는 약간의 투기였다면, 2020년 청춘들에게 주식은 그들의 욕망하는 미래의 삶을 살기 위한 '몰빵'이다. 그래서 절실하고 전투적이다. 그 욕망을 무시하거나 걷어차는 정치가 아프고 야속하다. 그러고는 분노한다.
1979년 정호승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달라고 간절히 부른 예수는 그러나 절망의 끝으로 걸어갔다. 이웃을 위하여 괴로
이제 하루 뒷면 찾아오는 2021년. 서울의 예수가 걸어가는 길이 또 다시 절망의 끝이어서는 안된다. 1979년처럼 청춘의 꿈이 잠들기 전 서울의 꿈이 먼저 잠들면 안된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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