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경북 포항에는 이른 아침이면 금융기관마다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이 목격된다. 오전 9시 문을 여는 금융기관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서다. 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금융기관 앞에 시민들이 몰리는 이유는 바로 '포항사랑상품권' 때문이다. 포항시는 설을 앞두고 500억 원의 '포항사랑상품권'을 발행해 10% 특별 할인 행사로 판매하고 있다. 10% 할인 행사에 돌입하다 보니 상품권은 판매 시작 5일만에 80%인 400억 원이 팔렸다. 판매를 한 포항지역 금융기관 162곳 중에서도 점포당 2~5억원 가량을 할당 받았지만 90%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상품권이 모두 소진됐다. 포항시는 종이형 상품권(최대 50만원)과 카드형(최대 20만원)을 더해 개인 1인당 월 70만원까지 구입할 수 있도록 한도를 정했다. 올해 3000억원의 상품권을 발행할 계획인 포항시는 연초부터 구입 열기가 뜨겁자 다음달에 300억원의 상품권을 추가로 발행하기로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높은 할인율로 판매되고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 수도 크게 늘어난 것이 상품권 구입 열기가 뜨거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지자체들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역상품권' 판매를 시작하자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진 상황에서 올해부터 국비 지원까지 확대되자 지자체들도 상품권 할인율을 최대 10%까지 늘리면서 구매 열기를 이끌고 있다. 지역 상품권은 지자체가 발행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소비할 수 있는 지역 화폐로 국비 지원 등을 받아 일정 할인율을 적용해 판매할 수 있다.
새해 들어 지역 상품권의 인기는 농어촌 지역도 마찬가지다. 인구 5만여 명에 불과한 경북 예천군에서는 지난 20일부터 10% 할인된 가격에 '예천사랑상품권'을 판매하자 60-70대 노인들까지 금융기관 앞에 줄을 섰다. 예천에서는 1인당 월 구매 한도가 종이상품권(최대 50만원)과 카드(최대 50만원)를 합쳐 최대 100만원으로 이틀 만에 13억원이 판매됐다. 예천군을 설을 앞두고 100억 원을 발행할 예정이지만 이달 중으로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도 새해 들어 10% 할인율을 적용해 지난 4일부터 판매를 시작해 일주일 간 354억원 어치의 군산사랑상품권을 팔았다. 군산사랑상품권은 2018년 9월 첫 발행을 시작한 후 28개월만 누적 판매 1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군산시는 상품권이 GM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소상공인 매출 증가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다음달부터 지역상품권 판매에 들어가는 지자체들도 많다. 충북 충주시는 2월 한 달 간 450억원의 충주사랑상품권을 한시적으로 발행하고 개인 구매 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개인구매 한도는 월 50만 원에서 월 70만 원으로 상향하고 상품권 소진 시까지 10% 특별할인도 진행한다. 충남 서산시도 2월 한 달간 '온통서산사랑상품권' 1인 구매한도를 기존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렸다. 이 기간 상품권도 10% 할인된 가격에 판매된다.
올해 발행 규모 15조원..할인 판매 지원 위해 국비 1조 투입
지역상품권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정부는 올해부터 국비 지원을 대폭 늘린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30개 지자체에서 판매한 지역상품권은 13조원에 달한다. 이는 2019년에 비해 4배, 2018년과 비교하면 무려 36배나 늘어난 판매액이다. 행안부는 올해 지역상품권 발행 규모를 15조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역상품권 발행을 위한 국비 지원도 올 들어 크게 늘어난다. 지자체들이 할인 판매를 위한 차액을 국비에서 지원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행안부는 할인 판매 차액 등을 위해 6690억원의 국비를 지원했다. 이는 전년도 884억원에 비해 6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2%
더 늘어난 1조 52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각 지역상품권의 할인율을 모두 10%까지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역상품권을 설 전까지 2조 7000억원, 1분기까지는 4조 5000억원 어치를 판매한다고 목표를 세웠다.
정부가 지역상품권 판매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행안부는 주민에게 판매된 지역상품권이 실제 소비돼 최종 환전된 비율도 99.8%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지역 내 소비 진작과 소상공인 매출 증대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행안부는 판매실적 등이 우수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추가 인센티브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세연 "정부 재정 지원 온누리상품권으로 일원화해야"
하지만 지역상품권의 경제적 효과가 미미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는 도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들을 내재하고 있다"며 "지역화폐 판매가 지역화폐 사용이 가능한 소매업 전체의 매출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부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조세연은 보고서에서 "소비의 역외 유출을 막으면 인접한 지자체가 매출 감소의 타격을 받게 되고 이에 대응해 모든 지자체가 각각 지역화폐를 도입하게 된다"며 "장기적으로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할 경우 소비의 역외유출을 차단해 발생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이로 인한 지역화폐 발행 비용 증가, 소비자 후생 감소와 같은 비효율성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 규모와 할인율에서 불리한 여건에 있어 오히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역화폐의 할인된 금액을 정부가 보조하고 있지만 이 경우 정부 보조금 지급으로 재정 지출과 순손실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지역화폐 발행 지자체 중 부산 인천 대전 강원 경남지역은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가 중복 발행을 하면서 행정비용 낭비와 지역화폐 발행 고정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간의 조율도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지역화폐의 이같은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조세연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온누리 상품권으로 일원화하고 지역화폐 운영시스템 보완과 소상공인 직접지원 예산 증액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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