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올해 초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A씨의 보고를 받은 소속 부서장은 "바쁜 시기인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느냐"며 그를 회유했다. A씨는 같이 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회사 대표가 가해자를 대기발령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가해자의 업무공백으로 부서장에게 업무상 부담이 늘면서 '2차 가해'가 발생했다. A씨는 "부서장이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키고 면박을 줬다"며 "(제게는)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비하하더니 프로젝트에서 아예 배제했다"고 토로했다.
최근 다수의 군(軍) 내 성폭력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며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조직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일반 직장 내 성폭력 관련 제보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라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13일 노동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올해 1~5월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014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성폭력 관련 제보가 79건(7.8%)이라고 밝혔다. 단체가 출범한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3년 동안 직장 내 성범죄 관련 제보가 1만101건 중 486건(4.8%)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비율상 1.6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에서 성폭력을 당해도 집단 따돌림 등 피해자에게 조직적으로 가해지는 보복 탓에 신고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단체가 지난 5월 받은 제보에 따르면 직장인 B씨는 상사에게 당한 성희롱을 신고한 후로 업무에서 배제됐다. B씨는 "퇴근 시간 이후에 남아있자 팀장이 저를 부르더니 '일도 없는데 왜 사무실에 남아있는 거냐'고 캐물었다"며 "후배들도 보는 공개석상에서 '사회성이 없고 팀원들과 융화되지 못한다'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성희롱 신고를 해도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은 만큼 법 적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3년 이
직장갑질119 소속 윤지영 변호사는 "2018~2019년간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2380건임에 반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20건밖에 되지 않는다"며 "처벌조항이 사문화된 셈이다. 엄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