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스나이퍼’ 이규섭(36, 서울 삼성)이 26년간 잡았던 농구공을 내려놓고 코트를 떠났다.
지난 14일 은퇴를 선언한 이규섭은 15일 강남구 논현동 KBL센터에서 공식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심경을 털어놨다. 이규섭은 수차례 말문이 막히면서 눈시울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규섭은 삼성에서 프로 데뷔해 단 한 번도 팀을 옮긴 적이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프로 출범 이후 삼성 구단 역사상 최초다. 이규섭은 삼성 구단의 지원을 받아 6개월간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계획이다.
대경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이규섭은 2000년 1라운드 1순위로 선발되어 삼성에 입단해 2000-01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 총 11시즌 동안 삼성에서 활약했다. 삼성에서 뛰면서 화려한 경력을 남겼다. 2000-01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이규섭은 2000-01시즌 통합우승에 이어 2005-06시즌 챔피언결정전 4전 전승 우승의 주인공이도 하다. 또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등 국가대표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이규섭은 프로 통산 574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0.3득점 2.6리바운드 1.2어시스트 0.5스틸을 기록했다.
이규섭은 삼성을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삼성은 나에게 농구”라고 의미있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한편 이날 이규섭의 은퇴 기자회견장에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에서 룸메이트로 함께 했던 부산 KT 조성민을 비롯해 고양 오리온스 전형수, 삼성 임동섭, 신기성 MBC 스포츠+ 해설위원이 축하를 하기 위해 찾았다.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이 자리를 있게 해준 삼성 구단 관계자 분들게 감사드린다. 축하받을 일이라 생각한다. 한 구단에서 단순히 오래 뛴 것이 아니라 원했던 팀에서 오래 뛸 수 있어 영광이었다. 아쉬움보다 기대감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서 이 길을 가도록 하겠다. 이 자리를 빌어 거의 전 경기를 따라다니시며 응원을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 은퇴를 하기까지 생각의 과정이 궁금하다. 계기가 있었나?
선수가 경기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시작을 보고 열심히 준비하겠다.
- 은퇴를 결정하기까지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은 어떤 점이었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 자신한테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냉정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더 많은 플레이를 하고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기량이나 몸 상태를 고려했을 때 어느 것이 맞을까 고민했다. 너무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지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쉬울 때 여기서 떠나는 것도 굉장히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지금 어떤 지도자가 되겠다고 말씀 드릴 단계는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았다. 김동광, 안준호, 유재학, 허재, 전창진 감독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이제 시작하는 것이다. 첫 발을 내딛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많은 감독님께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부분에 있어서 공부를 하고, 아래서부터 천천히 공부해 좋은 지도자가 되도록 하겠다.
- 은퇴를 미루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생각은 하지 않았나?
선수를 마무리 하는 입장에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구단과 은퇴 관련 얘기를 하면서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이다. 다른 팀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수많은 경기 중에 가장 기억나는 경기가 있다면?
삼성에서 플레이오프 7전 전승 우승했을 때 챔피언결정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2002 아시안게임에서도 주축 멤버는 아니었지만, 현장에 있었던 것만으로 영광스럽고 기억에 남는다.
3점슛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프로에 와서다. 지도자들 통해 외곽슛을 연습한 이후였다. 당시 외국선수도 있었고, 서장훈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외곽으로 전향을 해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빅맨에서 슈터로 전환이 쉽지 않은 일이다. 프로에서 성공 사례를 이뤘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내가 조언해줄 입장이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 포지션 전환은 확실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본다. 기존 선수들보다 더 나은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내가 갖고 있던 인사이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습을 통해 자신이 있을 때 포지션은 바꿔야 한다. 센터가 포워드로 갈 때는 센터의 플레이 훈련을 등안시 하면 안된다. 새로운 포지션은 조언을 구하고 연습하면 된다. 원래 자신의 포지션을 버리지 말고 멈추지 않고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전환한 포지션에서도 강점이 있는 선수가 될 것이다.
- 스승의 날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는?
김동광 감독님이 가장 생각난다. 처음 프로에 왔을 때 나를 선발해서 모자랐던 부분을 많이 가르쳐주셨고, 프로선수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시작과 끝을 모두 모시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같이 하는 것은 굉장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모시고 가야할 분이라 생각한다.
-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어떤 선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얻었나?
모든 선수를 만나면서 배운 것 같다. 모든 부분을 흉내내고 배우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 누구 하나 지목하기는 어렵다.
- 은퇴 후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었나?
후회는 누구나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만 생각하겠다.
-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강혁(삼일상고 코치)과 함께 은퇴를 하지 못했다. 어떤 생각이 드나?
지금도 전화 통화를 자주 하고 있다. 프로이기 때문에 그리고 은퇴라는 결정은 혼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김성철, 은희석 선수가 함께 은퇴하는 것이 보기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강)혁이 형이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혁이 형과 만나서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 은퇴하기 전 선수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껴줬던 많은 팬분들, 가르쳐주신 많은 지도자들, 뒷바라지해준 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 최근 친한 지인들끼리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데 무려 아홉 가족이 모였다. 알고보니 내 은퇴 깜짝 파티를 준비한 것이었다. 농구공 케이크까지 준비했더라. 정말 감동받았다. 고맙다
- 한 마디로 삼성은 어떤 존재인지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농구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이렇게 좋은 자리도 마련해주시고,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농구라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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