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다고 라커룸 기물까지 부수고 도망친 베이징 궈안 선수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생각하니 FC서울의 승리는 더더욱 속 시원한 본때였다. 아직도 귓가에 함성이 울리고 있고 동공에 환희가 서려있는 듯한, 오랜만에 맛본 짜릿한 경기였다.
FC서울이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궈안과의 ACL 16강 2차전에서 전반 8분 만에 선제골을 내주고도 후반에 3골을 몰아치는 무서운 뒷심으로 3-1 역전승을 거뒀다. 값진 8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가 상영되니 축구장을 ‘극장’에 비유하는 것이다. 21일 저녁 그곳은 ‘상암 극장’이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베이징은 수비력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 그런 팀이 마음먹고 내려앉으면, 너무도 갑갑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라인이 차츰차츰 내려가더니 전반 중후반부터는 마치 경기 막바지처럼 웅크리고 앉았던 베이징이다. 실상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1골을 내줘서 비겨도 자신들이 8강에 올라가는 유리한 위치를 점했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후반전 양상도 비슷했고 그래서 내심 어렵겠다 판단했다. 최용수 감독 역시 경기 후 “솔직히 불안한 기운이 돌았던 것도 사실”이라는 솔직한 고백을 전했다. 상대가 벽을 두껍게 쌓은 상황에서 시간에 쫓기면 쫓길수록 정교한 공격은 떨어지게 마련이니 골문을 열 확률은 점점 떨어지는 게 수순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후반 들어서도 서울의 공격력은 매서웠다. 하지만 베이징의 수비는 너무 두터웠다. 때문에, 저러다 계속 막히면 제풀에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찰나, 마치 들불처럼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FC서울 선수들의 뒤에서 힘을 북돋아준 바람은 바로 팬들의 서포팅이었다.
선수들이랑 똑같이 뛰었던 팬들이다. 선수들이 필드를 내딛는 것과 똑같이 관중석에서 발을 굴렀고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간절함으로 소리쳤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다른 울림이었다. 단순히 데시벨의 차이가 아니다. 진심으로 선수들이 이겼음을 바라는 감동적인 배경음악이었다.
사실 ‘보이지 않는 기운’이라는 것은 설명키 어려운 일이다. 그런 힘 때문에 결과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한 접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제의 역전승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작용했다. 흔히 서포터들을 12번째 선수들이라고 칭한다. 평상시에는 통상적인 수식어지만 21일 상암 극장에서는 분명 그랬다.
멋진 영화 한편을 완성시키는데 팬들의 BGM(BACKGROUND MUSIC)이 큰 몫을 했다는 생각이다. FC서울은 선수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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