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일본, 고베) 김원익 기자] 4번타자 이대호의 책임감은 단순히 홈런 숫자로 잴 수 없었다.
“타율 2할5푼에 삼진 100개 이상 당할 각오하고 풀스윙을 하면 홈런 30개를 넘기는 건 정말 쉬워요. 하지만 그렇게 못하겠어요. 득점 기회가 오면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으려고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집니다. 그게 저에겐 본능입니다. 그리고 4번 타자라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일본에 진출해서도 외롭다. 이대호의 팀은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최약체팀 오릭스 버펄로스다. 이제 2년째 도전. 이국땅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대호를 일본 현지에서 MK스포츠가 만났다.
▲ 이 악문 겨울, 13년차 프로의 다짐
일본 진출 1년차 치고는 이보다 더할 수 없이 뛰어났던 2012년이었지만 스스로는 못내 아쉬웠다. 최하위에 머무른 팀 성적 때문에 한번 더 이를 악물었다. 사이판 개인 훈련과 오릭스 스프링캠프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훈련까지 쉼 없이 달렸던 겨울이었다.
이대호는 “야구는 똑같아요. 저는 프로 13년차입니다. 일본야구 2년차라고 특별하게 준비한 것은 없습니다. 앞선 겨울 시즌에는 살을 빼려고 준비를 많이 했는데 이번 겨울 시즌에는 근육량을 많이 늘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체력은 어차피 시즌을 치르면 계속 떨어지기 마련이고 항상 대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지난해 이대호는 시즌 중후반까지 타격 전부분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타격 다관왕을 목전에 뒀다. 그러나 시즌 후반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타점왕으로 만족해야 했다. 일본야구에 진출한 선수 중 최초의 개인 타이틀 획득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사실.
체력 문제는 아니었다. 이대호는 “지난 시즌 후반기 부진은 체력 문제라기보다는 팀이 계속 최하위에 머무르니까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진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각오를 단단히 했다.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 둘. 신체적인 한계를 느낄 수도 있는 나이다. 그러나 이대호는 “그런 것 보다는,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하려고 합니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은 젊기 때문에 뒤쳐질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의식 하지 않고 전진해야 되는 시기잖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대호는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오릭스가 치른 186경기(144+42)에 모두 4번타자로 출장하고 있다. 오릭스 야수 중 에서는 유일한 전 경기 출장. 또한 전 경기 4번 타자 출장으로는 나카타 쇼(닛폰햄)와 함께 유이하다.
이대호는 지난 12일 닛폰햄전에서 선제타점 포함 2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활약 이후 4회 갑작스레 교체됐다. 일본 언론들을 통해서는 단순히 수면부족으로 소개됐지만 당시 이대호는 전날부터 몸살과 복통증세에 시달렸다. 심각한 탈수증상으로 경기 출전이 어려운 정도였다.
“원래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심한 몸살까지 겹쳤어요. 그날 아침도 사실 힘이 없어서 방안에 계속 멍하게 있었습니다. 전날 밤부터 설사도 계속 하고 토하고, 한 50번 정도 화장실을 간 것 같아요. 한숨도 못자고 경기 전에 약먹고 좀 누워 있으니까 감독님이 ‘나갈 수 있겠냐고’ 계속 물어보더라구요. ‘무조건 나간다’고 우겨서 경기에 나갔는데 데 막상 경기에 나가니까 힘들었어요(웃음). 이틀 동안 제대로 못 먹고 잠도 한 숨도 못자고 그런 상황에서 안타를 치고 전력 질주를 하니까 계속 어지럽고 구토가 자꾸 나더라구요. 그래서 바꿔달라고 했죠.”
이대호는 보통 경기 중 교체가 거의 없는 편. 이대호는 “감독님도 점수차가 보통 벌어지면 대수비로 보통 바꾸기도 하는데 교체를 안하더라구요(웃음). 농담입니다. 대주자가 들어오는 경우라면 또 팀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니까 당연히 나와야 되는 것이고, 안 바꾸면 타석이 안 돌아와도 수비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죠”라고 했다.
사실 최고 몸값을 받는 이대호라지만, 용병 선수가 전 경기를 출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구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이대호는 “책임감은 롯데에 있었을 때부터 몸에 배었던 일이에요.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선수들이 할 수 있는데 힘들어서 쉬는 경우도 있잖아요. 전 그런 경우는 없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팀이 지고 있더라도 4번 타자가 한번이라도 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남아 있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야구장에서 계속 뛰려고 생각합니다. 선수가 뛸 수 있으면 전 경기에 다 나가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몸 관리를 잘해야 하겠죠. 올해도 목표는 전 경기 출장입니다”라고 분명한 목표를 전했다.
▲ “외국인 선수, 판정 차별 분명 있다”
사실 몸살투혼을 펼쳤던 날 이대호의 갑작스러운 교체는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두 번째 타석에서 이대호가 원바운드 타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이후 구심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고, 이후 수비 상황에서 교체됐기 때문. 이대호는 당시 몸이 그토록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심판에게 항의할 정도로 경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대호는 “그때는 분명 소리가 났어요. 파울이 맞습니다. 항의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부분이 있습는데 억울한 부분이 많습니다”라며 다시 열을 냈다.
사실 한국야구와 마찬가지로 일본야구에서도 외국인 선수를 향한 구심들의 판정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2001년 터피 로즈가 왕정치의 한 시즌 최다 55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룬 이후 새로운 기록 경신을 위해 도전하던 당시 일본 야구계는 노골적인 편파판정으로 이를 막았다. 용병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외국인선수를 향한 차별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릇된 악습은 여전히 존재했다.
답답했지만 받아들였다. 이대호는 “일본 선수들 사이에서는 차별을 못 느껴요. 그런데 심판들의 판정 차별은 있는 것 같아요. 뭐랄까 투수들 스트라이크 존이 더 넓고, 한국보다 확실히 재량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심판이 스트라이크라고 하면 스트라이크인 것이니까요. 뭐 그런걸(차별) 이겨내야죠”라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해 이대호는 다시 외로운 4번타자였다. 고군분투라는 표현이 식상할 정도로 눈부셨던 일본 진출 첫 해. 팀 타선을 생각하면 기적적인 타점왕에 오른 것을 비롯해 타격 전 부문에서 훌륭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대호는 리그 2위인 24홈런을 쳐내고도 홈런수가 적다는 일부 팬들의 악의적인 비난을 받았다. 주축 타자들이 모조리 심각한 부진에 빠진 상황과, 극심한 투고타저인 일본 리그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악의적인 평가였다.
올해 이대호는 현재 타율(3할2푼5리)보다 훨씬 높은 득점권 타율 4할5푼을 기록중이다. 타점은 공동 3위(28)에 올라있다. 그러나 5월 예상치 못한 부진으로 리그 8위에 해당하는 6홈런에 머물러 있는 상태. 홈런 가뭄이라는 고민이 생겼다.
5월 동안 타율 2할1푼7리(60타수 13안타) 5타점의 침묵. 이대호도 최근 부진에 대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득점권 타율 4할5푼 타자의 자신감은 충분했다. “지금 확실히 떨어져 있는 시기에요. 제가 일본 투수들의 견제에 말려서 조급한 면이 있어요. 그럴 때 일수록 집중해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홈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이라도 타율 2할5푼 정도 칠 각오를 하고, 또 삼진 100개를 훌쩍 넘기더라도 매번 풀스윙을 하면 30홈런 넘기는 건 저한테는 정말 쉬워요. 그런데 그런 타자는 정말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돼요. 내 홈런 기록 욕심만 내는 건 몸이 안따라갑니다. 득점권 상황만 되면 어떻게든 타점을 올리려고 눈이 크게 떠지는데 어쩝니까. 야구를 그렇게 배웠어요. 홈런은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면 저절로 따라오는 거니까 저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결과론인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많이 못치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고, 제가 더 잘해야지요. 자신 있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이대호는 단순히 홈런과 타점만 높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유형의 타자가 아니다. 현대 야구에서 아직도 홈런이라는 허울 좋은 함정에 갖혀 있는 비난은 섣부르다. 이대호는 정확도와 출루능력, 타점 능력과 장타력을 모두 갖춘 완성형 타자다. 홈런만을 원하는 그릇된 시선은 온당치 않을 수 있다.
일본 현지 취재
中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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