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경기력에는 맥이 없었고 때문에 보는 이들은 맥이 빠졌다. 어떻게 경기를 풀어 나가야할지 좀처럼 맥을 잡지 못하면서 결국 결과도 내용도 졸전이 되어버렸다.
실망스러운 결과보다 심난한 것은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이 나왔다는 것이다. 결과야 여러모로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으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관용어구인 “경기를 잘 풀고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는 달랐다. 레바논전에서 한국은 “삐걱거리던 와중 용케 찾아왔던 몇 차례 찬스도 운이 없어 날려버린” 꼴이었다.
남은 일정을 위해서 질책이 필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특정 선수의 탓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지양해야겠다. 누군가를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누구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최강희호의 실패 원인이기도 하다. 레바논전은, 어떤 선수가 아닌 ‘대표팀’이 못했다.
구심점이 보이지 않았다. 두 가지 측면에서의 구심점이다. 하나는 전술적 구심점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중심이다. 하나의 팀이 경기를 풀어나감에 있어 공히 중요한 요소다. 전자부터 설명한다.
전술적인 축이 없었던 경기다. 개인기가 화려한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든, 전체적인 컨트롤 능력이 뛰어난 안드레아 피를로가 후방에서 조종하든, 팀에는 방향을 잡는 플레이어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도 구심점이 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최강희호는 점처럼 흩어져 섬처럼 떠돌았다.
전방의 공격수들은 매복이라도 서겠다는 생각인지 무조건 상대진영 깊숙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넣는 것만큼 실점하는 것을 지양했던 조건 속에서 김남일-한국영 중앙미드필더 조합은 한참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1선과 2선 사이가 휑했던 이유다.
공격수들끼리도 따로 놀았다. 이동국과 그 뒤를 받치는 김보경의 호흡은 좀처럼 맞지 않았고 팔팔했던 이청용에 비해 이근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날갯짓도 한쪽으로 치우쳤으니 효과가 떨어졌다. 종으로도 횡으로도, 유기적인 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소위 에이스라 부를 수 있는 선수를 보유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팀이든 메시나 호날두가 있다면, 램파드나 피를로가 있으면 수월하다. 특출한 구심점이 없다면,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이는 대한민국대표팀을 비롯한 많은 팀들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기도 하다. 뛰어난 한두 명을 하나로 뭉친 11명이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축구인 까닭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고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할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한 전술적 구심점과는 달리,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맡아줄 선수들은 최강희호 스쿼드에 많았다. 전방에 이동국이 있고 중원에 김남일이 있었으며 후방에는 곽태휘가 있었다. 이동국과 김남일은 거의 A매치 100경기(각각 97회/98회 달성)가 가까운 베테랑들이고 곽태휘의 팔에는 주장완장이 감겨 있다.
하지만 세 선수들 중 누구도 리더가 되지 못했다. 본인들 스스로도 고충이 컸던 탓이다. 전반부터 이어진 실수와 불운에 마음이 조급해진 이동국은 전북에서 그렇게 잘하던 이타적인 플레이를 선보이지 못했다. 후배 공격수들을 다독이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넣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동국답지 않은 부정확한 슈팅이 남발됐다.
3년 만에 A매치에 나온 김남일에게 여유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자신의 플레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모습은 느껴졌다. 덕분에 무난한 플레이가 나왔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선수단 전체를 통솔하는 ‘그 너머’를 바라기는 힘든 복귀전이었다. 곽태휘가 다르지 않았다. 또 새롭게 바뀐 포백라인이라는 핑곗거리와 함께 수비진 컨트롤하기도 급급한 모습이었으니 후방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어려웠다.
최강희호는 점처럼 흩어져 섬처럼 떠돌았다. 서 말 구슬을 모아놓아도 꿰지 못하면 보석이 될 수 없고, 응집력이 없는 모래성은 결국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레바논전에서 최강희호가 잘 보여줬다. 잘 보여줘서는
팬들은 ‘대표선수’들의 플레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 ‘대표팀’의 경기를 보길 원한다. 이제 2경기 남았다.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해서, 종착지를 향해가는 최강희호의 유종의 미를 위해서도 반드시 유념해야할 일이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