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가 전화위복이다. 출전하지 못했던 것이 차라리 약이 됐다. ‘독도세리머니’로 그렇게 홍역을 치렀던 박종우가 발목을 잡았던 ‘독도세리머니’ 덕분에 외려 가치가 높아진 모양새가 됐다.
실망스러운 결과와 내용을 안겼던 레바논전 이후 많은 비난의 시선이 출전 선수들에게 향했다. 누가 문제가 아니라 팀 전체의 문제였기에, 누구도 쓴 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적이 향한 곳이 공격진과 중앙 미드필더였다. 공격수들은 골을 넣지 못한 죄로, 중앙 미드필더들은 허리를 휑하게 하여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한 탓으로 도마에 올랐다.
레바논전 이후 본격적인 훈련이 가동됐던 7일, 최강희 감독은 박종우를 주전조에 투입했다. 김남일이 엉덩이 쪽의 가벼운 부상으로 불참한 가운데 박종우는 이명주, 김보경과의 호흡을 조율했다. 중심은 박종우였고 다른 선수들이 번갈아 파트너로 나선 훈련이었다. 런던올림픽에서의 ‘독도세리머니’ 때문에 3월 카타르와의 5차전, 지난 5일 레바논전을 모두 출전하지 못했던 박종우에게 기회가 돌아오는 흐름이다.
올 1월 박종우는 “앞으로 최종예선이 4번 남았는데 그 중에서 2번을 나갈 수가 없다. 너무 씁쓸하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하지만 2경기가 남아있다. 누군가가 앞선 2경기에서 감독님의 눈을 사로잡는다면 KO 당하겠지만 나에게도 2번의 기회가 있다. 그것만 바라보고 준비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전한 바 있다. 그 기회가 왔다.
공격라인의 형태가 어떻게 갖춰지느냐에 따라 미드필드 진영의 변화가 생기겠으나 현재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박종우의 출전 가능성은 꽤 높아 보인다. 레바논전에서 보여진 김남일의 노련한 운영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힘과 세기는 부족했다. 활동반경 역시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 보완해줘야 할 파트너 한국영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조합의 변화 필요성을 느끼게 했던 레바논전이다.
마치 전성기 때 김남일을 연상케 하는 방대한 활동량과 근성과 투지로 똘똘 뭉친 박종우의 장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항의 이명주가 비슷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아무래도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박종우가 비교 우위를 점한다. 원조 진공청소기와 새로운 진공청소기의 만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박종우의 가치는 비단 투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대표팀에는 마땅한 오른발 키커가 없는 상황이다. 기성용과 구자철이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데드볼 상황에서 오른발로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올려줄 선수가 보이질 않는다. 레바논전에서 스트라이커 이동국이 두 차례나 프리키커로 나선 이유기도 하다. 김치우라는 왼발을 찾았으나 오른발이 허전해졌다.
때문에 박종우의 가치는 또 빛난다. 박종우는 소속팀 부산아이파크에서 프리킥을 도맡을 정도로 킥이 좋다. 기성용에 가려졌을 뿐, 런던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아쉬움을 곱씹으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박종우에게 귀중한 기회가 제공됐다. 지금 최강희호는 박종우의 투지와 박종우의 오른발을 필요로 하고 있다. “출전할 수만 있다면, 죽기 살기로 뛰겠다”던 터프가이 박종우에게 많은 시선이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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