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결국 선택은 홍명보였다. 대한축구협회는 24일 “최강희 국가대표 A팀 감독의 후임으로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 홍명보를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5년 아시안컵까지 2년이다.
지난 18일, 최강희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던 이란과의 최종예선전이 끝난 직후부터 떠돌던 홍명보 감독 내정설은 결국 사실이었다. “유력한 후보인 것은 맞으나 결정된 것은 없다”던 축구협회의 반응은 결국 시간 끌기용 입장이었고 귀네슈와 비엘사 등 거론됐던 외국인 감독들의 이름은 허공을 맴돌았던 허상이었다.
승부사 홍명보 감독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됐다. 많이 망설였고 또 심사숙고 했겠으나 그는 다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사진= MK스포츠 DB |
축구협회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홍명보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관건은, 과연 홍명보 감독이 지금 상황에서 독이 들었다는 잔을 들 수 있을지의 여부였다. 실상 위험부담이 컸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이라는 큰 숙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지금껏 쌓아왔던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승부사 홍명보는 피하지 않았다. 분명 망설였고, 심사숙고를 했겠으나 결국 정면 돌파를 택했다.
축구인 홍명보의 과거는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아깝지가 않다. 어릴 때부터 지금껏 평생을 축구와 함께한 세월 속에 크고 작은 굴곡이 없지는 않겠으나 다른 축구인들과 비교할 때 홍명보의 커리어는 줄곧 성공과 함께 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내내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대표팀 최고참이던 2002월드컵에서 4강을 확정짓던 PK를 성공시킨 뒤 세상에 더 밝을 수 없는 웃음으로 마무리됐던 홍명보의 선수시절 커리어는 시종일관 빛났다. 작은 실수가 있어도 놓치지 않고 성토가 쏟아지는 대한민국의 풍토에서 홍명보만큼 국민적 사랑을 받은 이도 드물다.
지도자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빨리 중책을 맡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 혹은 우려 속에서도 그는 보란 듯이 가시밭길을 헤쳐 나갔다. 2009년 U-20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그리고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까지 거침이 없었다. 결코 운에 기댄 발자취는 아니다. 때마다 과감하게 발휘했던 승부사 기질이 환한 지금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은 강수를 던졌다. 병역비리 문제로 인해 국민적인 반감을 사고 있던 박주영을 와일드카드로 발탁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던 박주영과 함께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국민에게 사죄하던 박주영의 옆에서 홍명보 감독은 “주영이는 그 동안 한국축구를 위해 많은 역할을 했고 또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주영이를 이렇게 어려운 자리에 혼자 보내는 게 안타까웠다.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며 동석한 이유를 설명한 뒤 “만약 주영이가 군대를 끝까지 안 간다면 내가 대신갈 것”이라는 진지한 농담을 전했다. 필요한 선수를 품기 위해 정면 돌파를 감행한 것이다.
결국 이번 대표팀 사령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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