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 가끔은 이성과 냉정사이 /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 가슴 조일 때도 있고 /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 특별한 조화의 / 완벽한 인생 / 화려한 미래 / 막연한 동경 / 누가 그랬다 /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 이석희 시집 <삶도 사랑도 물들어 가는 것> 중 ‘누가 그랬다’
기성용이 끝까지 말썽이다. 논란의 공간이었던 SNS을 통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그래서 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글을 게재해 다소 잠잠해지던 축구판을 다시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안타까운 마지막 행동은 없었어야했다. 그래도 자신을 옹호해주는 팬들을 생각했다면 자중과 자숙이 필요했다. 사진= MK스포츠 DB |
기성용이 ‘직접’ 썼다고 하는 그 사과문에는 “해당 페이스북은 공개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이유가 어찌됐든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 치기 어린 글로 상처가 크셨을 최강희 감독님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앞으로 더욱 축구에 전념하여 지금까지 보여주신 팬들과 축구 관계자 여러분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반성과 함께 다짐이 적혀 있었다.
기성용의 부친인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이 직접 축구협회를 찾아 사과의 뜻을 전했던 날 공개된 기성용의 사과문과 함께 일파만파 퍼지던 파장은 그래도 많이 잠잠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태의 진정이 빨랐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철없는 말로 축구판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철부지로 다시 돌아간 기성용은 사흘 만에 다시 논란의 공간을 들락거리다 팬들에게 발각됐다.
8일 오후 기성용은 그 비밀공간에 예쁜 음식 사진을 올렸고 모두에 밝힌 시를 게재하면서 아직 심기가 불편한 축구팬들을 분노케 했다. 성토의 요는 간단하다. 지금이 이럴 때냐는 지적이다. 틀린 말 아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탓이겠으나, 적어도 지금이 그럴 때는 아니란 것쯤은 알았어야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먼 걸음과 함께 머리를 숙였고, 자신을 아끼는 팬들이 최소한 마녀사냥은 자제하자며 애를 쓰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귀중한 자산을 어찌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와중 ‘누가 그러는데, 젠장 다들 아프며 산다더라’는 넋두리로 들리는 시를 인용한 것은 심했다. 넘겨짚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과한 뒤 마지막으로 ‘발끈’한 것 같은 인상이다.
기성용은 다시 논란이 커지자 그 비밀공간마저도 폐쇄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본인이 감지했는지 아니면 안타깝게 아끼는 지인들이 다시 등 떠밀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부랴부랴 문을 닫았다. 어쩌면, 일부러 잠깐 공개하고 이내 철커덕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 마지막으로 ‘욱’한 인상이 적잖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지금은 기성용의 국가대표답지 않은 처신으로 인해 축구협회의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축구협회는 고민이 깊다. 징계를 내리기도, 그냥 묵과하기도 애매한 까닭이다.
규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기성용의 항명은 선수로서 “감독 및 코치의 지시에 순응할 의무”를 어긴 것이고 “고의로 대표팀의 명예를 훼손한 자”라는 징계 조항에도 해당된다. 징계의 수위는 고민되겠으나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명분이 약하지는 않다. 하지만, 일종의 ‘뒷담화’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걸린’ 것을 가지고 벌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축구협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기성용은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 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느낌이다. 적어도 축구계에는, 실망을 줄 수 있는 비중을 가진 인물이다. 사진= MK스포츠 DB |
누군가는 축구 선수 한 명에게 너무도 가혹한 몰아세움 아니냐고 한다. 아니다. 일반적인 한 명이 적은 글이었다면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기성용은 대한민국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 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 같은 느낌이다. 홍명보나 황선홍, 박지성과 안정환 같은 느낌을 주는 차세대는 기성용이다. 적어도 축구계에는, 실망을 줄 수 있는
가뜩이나 ‘에이전트를 통한 사과문’이라는 형식 때문에 진정성 논란을 일으켰던 그의 사과마저 더더욱 의심받게 됐다. 축구선수 기성용에게 성인군자의 도덕적 완성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그쳤어도 이 정도까지 논란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