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나이 마흔이 되면 세상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는다.’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불혹(不惑)을 이 같이 말했다. LG 트윈스의 좌완 불펜 투수 류택현은 불혹을 훌쩍 넘긴 우리나이 마흔 셋. 프로야구 최고령 투수다. 그가 살아가는 법 또한 미혹되지 않는 삶이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프로야구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LG 트윈스 최고령 투수 류택현이 등판할 때마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역사는 새로 써지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류택현은 1994년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문했다. 5년 뒤 LG 트윈스로 이적해 20년째 프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늘 푸른 소나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류택현은 “수술 이후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땐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그때는 2010년이다. 팔꿈치가 고장 났고, 은퇴를 권유 받았다. 자비를 들여 수술대에 올랐다. 나이 마흔에 홀로 재활을 시작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겨냈다. 최다 홀드 기록을 세운 뒤에야 그때를 추억거리로 꺼내들 수 있었다.
류택현은 올 시즌 전반기 34경기서 12홀드를 기록했다. 2009년 73경기서 세운 12홀드와 타이 기록이다. 평균자책점도 통산 4.41보다 낮은 3.57을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야구인생을 살기에 늘 푸를까.
류택현은 지금껏 살아남은 비결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면 짜증난다. 우리 나이되면 스스로 한다”며 “공중도덕이나 다이어트처럼 100% 다 지켜나가는 것이 힘든 것을 몇 %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70~80% 지킨다고 자신했다.
류택현은 오직 야구를 위해 사는 남자다. 그의 생활 습관은 야구 시간으로 돌아간다. 시즌 중에는 야구장, 집, 숙소를 오가는 일상을 반복한다. 류택현은 “거의 비슷한 생활 습관으로 시즌을 보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활 패턴이 무너진다”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말 술을 먹고 싶을 때는 계곡 같은데 가서 시원하게 막걸이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전부다. 우루루 술집으로 몰려가서 소주를 먹고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류택현은 요즘에도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다. 공 한 개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 “나도 사람이다. 마음이 편해질까봐 채찍질을 많이 한다. 초심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어려웠을 때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내 보직은 공 한 개가 중요하다. 일어나지 않은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공 한 개에만 집중한다”며 “후배들에게도 ‘볼이나 스트라이크를 던졌을 때 맞으면 어쩍지’ 생각하지 말고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택현은 과연 언제까지 던질 수 있을까. 송진우 한화 코치가 2009년 세운 만 43세 7개월에 2년이 남았고, 1000경기 등판 기록도 도전할 만하다. 하지만 류택현은 정해 놓은 것이 없었다. 그는 “감독님을 잘 만나서 여기까지 왔다. 보통 젊은 감독님은 베테랑을 잘 쓰지 않는다. 은퇴를 할 뻔했던 이병규는 지금 전성기 아닌가? 감독님이 없었다면 아마 나도 없었을 것이다”라며 “내가 잘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1000경기도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다만 “50살까지 던지는 것은 힘들다. 팔꿈치가 아니라 그냥 팔이 아프다”라고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류택현은 20년 야구 인생을 묵묵히 한 자리에서 지킨 ‘노송(老松)’이다. 그런 그에게도 올 시즌 LG의 야구는 다르단다. 그는 “내 야구 인생 처음으로 야구가 재밌고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LG의 전반기를 드라마에 빗대 “아역 배우가 시청자를 잡은 뒤 주연 배우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드라마 같다”고 표현했다. 그의 잔잔했던 모노드라마도 올해는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꿈꾸는 LG와 함께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마운드에 우뚝 선 소나무처럼 류택현은 어제도 던졌고, 내일도 던진다. 사진=MK스포츠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