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2년 차 야구 전문 아나운서 정순주(28).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 속에 스포츠에 대한 강한 열정을 지니고 있는 강인함이 묻어 있다.
무용교사였던 정순주는 세상 사람들의 연결고리가 되고자 아나운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용수로서 몸으로 세상을 표현했다면, 이제는 아나운서로서 말로 세상을 알리고 있다.
남자세계에 투입된 여자이기 때문에 “가끔은 남자이고 싶다”라는 정순주 아나운서. 그녀가 느낀 야구의 내면세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무용교사 출신 정순주 아나운서는 인연을 맺어주는 세상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
어린 시절 탤런트 박한별 황정음 등과 함께 리틀엔젤스 단원이었던 정순주는 선화예술중-고등학교를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정순주는 무용교사를 꿈꾸며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에서 체육학과 체육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연구실에 들어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초등학교 특별활동 교사로 80~120명의 제자를 뒀고 서울문화재단에서 무용-연극-그림 통합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문화예술 강사로도 활동했다.
순차적으로 무용교사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온 정순주는 “석사 후 박사에도 도전을 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무용하는 언니들을 따라 다니며 어린 마음에 무용에 매력을 느꼈다면 지금은 아나운서의 모습에 매료돼 뒤늦은 새 길을 향해 도전했다”고 전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정순주는 26살에 아나운서 아카데미 문을 두드렸고 도전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막연한 꿈이 아니었다. 예술을 전공한 정순주로서 아나운서는 새로운 예술가로 발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컸다.
정순주는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이제 나도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아나운서의 꿈을 꿨다”며 소신을 뚜렷하게 밝혔다. 이어 정순주는 “몸으로 얘기하는 무용사였고 내가 가진 걸 이웃에게 나눠주는 교육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에게도 내 말을 통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아나운서가 됐다. 1분 동안 약 3천여 명에게 내 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이 과정을 통해 순차적으로 다져진 것이다”라며 웃었다.
야구에는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한 정순주 아나운서는 선수들과의 인터뷰에서 한을 풀어주고 싶다고 한다. 사진=김영구 기자 |
무용을 전공한 정순주의 대학 동기 중 체육학과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내는 강인함을 배웠다.
정순주는 “체육학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들의 경기를 자주 보러 다녔다. 정확한 룰(Rule)은 잘 모르지만, 친구들이 경기를 통해 보여주는 스포츠맨십에서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스포츠와 예술이 닮았다고 주장한 정순주는 “경기 진행에 있어 재미를 떠나 어떻게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지를 보고 공감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처음부터 야구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진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입사 당시 야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많은 지적을 받았다. 멈출 수 없었다. 첫 발을 내딛은 야구계에 열정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야구장을 찾았다.
노력의 진행과정에서 정순주는 긍정적인 결과를 맛봤다. 정순주는 “지난해 야구에 대해 뭉뚱그려 배워 좋았던 점보다 어려웠던 점이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야구를 알고 봐서인지 야구의 매력을 직접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왜 야구에 열광하는지 알겠다”라며 야구팬이 된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했다.
정순주가 야구와 더 친근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직장 선배의 가르침이 뒷받침됐다. 정순주는 “임용수(XTM) 선배가 야구와 인생을 왜 비교하는지에 대해 얘기해줬다. 야구선수 중 스토리가 있는 선수들이 많고 9회말 2아웃이어도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기에 감동적이고 앞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심어주는 것이 야구라고 설명했다”라고 전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야구를 이해한 정순주는 야구의 깊이를 비로소 깨달았다. 이는 곧바로 정순주의 인터뷰 질문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정순주는 “가슴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있다. 속사정을 알고 있기에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춰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질문지를 작성하고 있다”며 “인간적인 삶의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또 선수들과 팬들을 연결시켜주는 아나운서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정순주 아나운서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오늘이 아닌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사진=김영구 기자 |
지난해 ‘야구 모르는 아나운서’라는 이미지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포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정순주의 마음을 잡아준 민훈기(XTM) 해설위원의 조언이 포기가 아닌 긍정의 힘을 실어주었다.
정순주는 “민훈기 위원님이 선수들도 나와 같다고 말했다. ‘타자가 3할을 치기 위해서는 10번 중 3번 안타를 치면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늘의 실수를 잃어버리고 내일 경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라고 조언했을 때 신입으로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야구가 정신력 싸움이듯 생방송을 진행하는 정순주 역시 한 순간도 집중을 놓칠 수 없었다. 정순주는 “마운드의 투수들과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이 나와 같다. 투수가 잘 못 되면 볼을 던지고 타자는 헛스윙해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강심장을 가진다면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제법 단단해졌다는 정순주는 “각자의 인생에서 아픔과 기쁨이 공존한다. 그걸 긁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라며 “부딪히니 야구의 내면을 직접 보고 느꼈다. 인생을 가르쳐준 야구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라며 야구공을 어루만졌다.
선수들이 가족같다는 정순주 아나운서다. 그러나 여자 아나운서가 부딪혀야할 장벽 때문에 "가끔 남자이고 싶다"라며 웃었다. 사진=김영구기자 |
선수들이 가족 같다는 정순주다. 이 때문에 인터뷰에 있어서도 가족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내고 좋게 전달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정순주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음은 사심이 아니다. 모두 내 자식 같고 남자친구 같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순주는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남자이기 보다 내면에 모든 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라며 웃었다.
늦은 출근에 늦은 퇴근, 잦은 출장. 정순주는 남자친구를 사귈 여유조차 없다며 울상이다. 그러나 아직은 일을 잘 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더 크다고 한다.
정순주는 “여자가 사랑을 받았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 일에 대해 칭찬을 받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에 더 행복을 느낀다”라며 “여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직은 이런 내 모습이 좋다. 앞으로 더 해야 할 일들도 많이 남아있다. 갈 길이 바쁘다”라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가끔 남자이고 싶다는 정순주다. 남자들로 구성된 야구계에 여자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부딪히는 장벽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정순주는 “선수들과 인사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과 가깝게 이야기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눈치가 보인다”라며 아쉬워했다.
이어 정순주는 “선수들과 동료애를 느끼고 싶다. 무용을 했기에 몸을 풀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 배트를 들고 밀어치기가 어떻게 되는건지, 어떻게 인-아웃 스윙을 하는지 등 많은 부분을 직접 체험하면서 배
이 대답에는 야구에 대한 깊이를 더욱 깨닫고 싶다는 정순주의 뜻이 담겨있었다. 정순주는 “호기심이 아닌 야구팬들에게도 인정받는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노력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팬들이 말하는 스포츠 아나운서 정순주가 돼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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