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근본부터 위기다.
대한민국청소년대표팀 8일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순위결정전서 베네수엘라를 6-1로 꺾고 최종 5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으나 아마야구의 근본적인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대회이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서 아마야구의 최고선수들이 보여준 경기력과, 드러난 아마야구의 근본적인 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아마야구의 문제점을 집약시킨 대회’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으로 호쾌한 스윙‧투지‧기본기가 실종된 3無의 대표팀이었다.
▲ 호쾌한 스윙 사라진 한국, 똑딱이 야구로 전락
한국은 1라운드와 2라운드 도합 5승4패를 거뒀다. 호주, 이탈리아, 콜롬비아 1번, 베네수엘라를 2번 꺾었고 미국, 쿠바, 일본, 대만에게 패배했다. 승패팀의 면면을 봐도 객관적으로 대표팀의 이번 대회 한국의 전력이 드러난다. 몇 수 아래의 팀들에게만 승리했다.
청소년야구대표팀이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를 최종 5위로 마무리했다. 근본적인 위기를 드러낸 대회였다. 사진=MK스포츠 DB |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많은 야구인들은 알루미늄 배트에서 나무배트로 바꾸고 난 이후부터 아마야구 선수들의 스윙궤적이 천편일률적인 흐름을 쫓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마야구 지도자들이 반발력이 떨어지는 나무배트로 장타를 만들어내기 어렵게 되자 다운스윙 위주로 타격을 가르치고 있다. 공을 때리는 것이 아닌 맞히는 식의 스윙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야구인은 “당장의 성적에 급급해 강한 땅볼을 만들어 상대의 실책을 유발시켜 점수를 내는 야구를 너나할 것 없이 하고 있다, 좋은 스윙으로 만들어진 안타보다는 짜내는 점수로 얻은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때도 프로에 와서 스윙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맞았지만 최근 아마야구의 흐름은 심각하다. 당장 대회에서 1개의 홈런만을 쳐도 홈런왕이 된다”며 개탄했다.
이번 대회서 한국이 기록한 홈런은 임병욱의 홈런 1개가 전부. 대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올해 고교 홈런 랭킹 1위는 4홈런의 배병옥(성남고)이고 3개를 친 선수는 김도형(성남고), 임동휘(덕수고), 최우혁(서울고)의 3명뿐이다. 2홈런 이상까지 포함해도 총 10명에 불과하다.
경기 수가 적고 선수들의 성장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점이라고 하더라도, 심각할 정도의 홈런가뭄이다. 홈런 실종이 상징하는 의미는 크다. 단순히 장타 부재가 아니라 스윙 매커니즘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회를 중계한 양준혁, 안경현 SBS 해설위원은 공통적으로 스윙궤적과 매커니즘을 지적했다. 두 해설위원은 “갖다 맞히는 식의 답답한 스윙을 하고 있다. 설령 안타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제 스윙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타자들이 다운스윙을 하고 있는데 저런 타격으로는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정확한 스윗 스팟에 맞히기 어렵다. 이는 결국 장타가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저런 식의 스윙으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적대로 대회기간 내내 한국 타자들은 내야를 넘기는 속 시원한 타구를 많이 생산하지 못했다. 대부분 힘없는 뜬공이거나 땅볼에 그쳤다.
한 야구 전문가는 “아마추어 야구가 절름발이가 됐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우투좌타 똑딱이 타자들밖에 없는 야구판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태극마크의 자부심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일까. 사진=MK스포츠 DB |
한국은 정신력 문제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미국과 쿠바전 1점차 석패나 일본전 콜드게임패, 대만전 승부치기 패배 과정에서 아마야구의 패기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더그아웃은 침울하기는 했지만 특별히 패배에 대해서 분한 감정을 느끼는 선수를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열을 내는 코칭스태프가 답답해보일 정도의 평온함마저 감돌았다. 심지어 일본전 대패 과정에서도 미소를 짓고 있는 선수들이 다수 보일정도. 이는 결과로도 나타났다. 속 시원하고 끈질긴 역전승은 없었다. 강팀과의 경기서는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많은 경기 실책을 남발했고, 집중력이 떨어진 실책성 플레이도 잦았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대만전서도 승부치기 끝에 패했다.
투수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특히 5경기에서 22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2.82을 기록한 한주성과 3승을 올린 박세웅을 제외한 투수들이 기본적인 컨디션 관리에서 문제점을 보였다. 본인들의 평소 구속과 밸런스에 못미치는 공을 던졌다. 심지어 몇 명의 선수들은 대회 기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회에 맞춰 몸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표팀 20명 중 김규남(덕수고)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로에 지명된 상황. 아마야구의 모든 대회도 끝난 시점. 묘한 시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뽑혔다는 자부심을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는 선수들이 다수 존재했다.
특히 클린업트리오에서 활약한 모 선수는 일본전을 마치고 선수들이 단체로 악수를 할 때 혼자서 악수를 계속 거부하는 행동이 일본 중계화면에 잡혀, 일본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스포츠와 아마추어 정신의 근본을 잊은 대표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 실책남발, 기본기 실종
실책이 쏟아졌다. 특히 일본전은 기본기 실종의 모든 사례가 집약된 경기였다. 번번이 무리한 주루플레이로 흐름을 끊었다. 내야수들은 기본적인 베이스 커버조차 하지 못했고, 외야수는 무리한 송구를 남발했다. 특히 송구를 중계하는 내야수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비 불안을 드러냈다. 포수의 포구와 블로킹은 재앙 수준이었다. 투수가 변화구를 던지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진루타를 만들어내야 하는 흐름에서도 이를 수행해내는 작전능력을 가진 타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0-10, 7회 콜드게임패의 수모보다 기본기 없는 한국야구의 절망이 더욱 컸다. 비단 일본전뿐만이 아니었다. 대회 내내 주루사는 한국의 트레이드 마크에 가까웠다. 특히 본헤드급 플레이에 가까운 경우가 상당수였다.
주말리그제 도입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훈련량은 줄어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단기간 대회에 집중해 선수들을 투입시킬 수 있게 되면서 특정선수들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때문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실력 편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위기. 학부모들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고교야구의 구조상 진학이 중요한 3학년들을 우선적으로 기용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1,2학년들의 지도를 등한시 하는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설 야구교실, 아카데미의 탄생과도 맞물려 ‘야구과외’라는 새로운 신조어도 만들어지고 있
대다수의 야구인들은 터질 문제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2년 연속 대회 5위의 표면적인 성적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아마야구에 잠재돼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한국 야구의 건강한 뿌리를 되찾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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