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결국 또 거짓말이었다. 절대 폭행은 없었다는 말도, 동석한 아내를 보호하려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예전의 이천수가 아니라던 억울한 호소도 모두 거짓이었다.
이천수가 16일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 14일 새벽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한 술집에서 다른 테이블의 손님 김모(30)씨를 때리고 김씨의 휴대전화를 부셨다는 혐의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 이천수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자신이 과거 지은 죄가 있어서 오해의 시선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이번 일은 너무 억울하다는 주장이었다.
14일 오전 인천 구단은 MK스포츠와의 통화에서 “아내도 있는 자리에서 한 취객이 너무 과하게 시비를 걸어와 불가피하게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은 없었다고 했다. 이천수의 손에 피가 난 것은, 화를 삭이는 과정에서 테이블의 맥주병이 깨져 다친 것이다. 일부 보도처럼 상대방에게 병을 던졌다면 이천수 손에 상처가 나는 게 이상하다”면서 “아직 정확한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천수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는 정황을 전했다. 구단은 이천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속았다.
결국 또 거짓말이었다. 폭행은 있었고 아내는 없었다. 구단도 팬들도 모두 속였다. 어렵게 필드에 복귀한 지 반년 만에 또 사고다. 양치기 소년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사진= MK스포츠 DB |
거짓말의 백미는 ‘아내 운운’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이천수는 “모르는 사람이 와이프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 말에 대다수 팬들의 마음이 동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내에게 해코지를 가하려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참아낸 이천수’라는 동정론이 대세였다. “그래도 끝까지 참았어야 했다”던 김봉길 인천 감독의 충고가 팬들에게 욕을 먹었을 정도로 이천수를 향한 옹호론이 뜨거웠다. 심지어 이천수에게 시비를 건 사람을 공개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이제 이천수는 달라졌다’는 전제 속에서 팬들은 이천수를 편들었다. 하지만 결국 ‘양치기 소년’에게 또 당한 꼴이 됐다. 경찰 조사 결과 술자리에 아내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충격적인 거짓말이었다.
이천수의 거짓말이 밝혀지자 팬들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인천 구단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천수의 죄를 숨겨주기 위해 한통속이 된 꼴이 됐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었던 ‘양치기 소년’ 때문에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까지 아무렇지 않게 팔아버린 행동은 너무 뻔뻔했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제 아내도 있고 딸도 있다. 예전의 이천수가 아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를 일이다.
전남드래곤즈가 임의탈퇴 신분을 풀어준 것이 올해 2월의 일이다. 이천수는 지난 2009년 전남의 유니폼을 입은 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고’를 쳤다. 심판의 결정에 도에 지나치게 불만을 표출했고, 팬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리고, 코치에게 항명하는 등 끊임없이 마찰을 빚던 이천수는 결국 팀을 마음대로 이탈해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서 뛰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전남은 그해 7월 이천수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했다. 전남이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이천수가 국내무대에서 뛸 방법은 없었다.
그랬던 전남은 2월22일 “지난 2009년 항명 및 무단이탈 등 물의를 일으켜 임의 탈퇴 신분이 된 이천수에 대한 임의탈퇴 철회 계획이 없었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을 비롯한 많은 축구관계자들과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선처를 희망하는 의견을 존중하고 이천수가 그동안 한국축구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고려하여 고심 끝에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말로 대승적 차원에서 ‘족쇄’를 풀어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당시 전남의 발표문을 보면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란 뉘앙스가 느껴진다. 사실 전남은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다. 임의탈퇴 철회 발표 1년 전이었던 2012년 1월6일, 전남은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당시 전남은 “이천수 선수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고 유사사례의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바, 임의탈퇴 선수 공시 철회에 대한 논의는 이천수 선수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여 국내 프로축구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고 이들로부터 용서를 받은 후에 이루어 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일부 팬들은 전남 구단의 옹졸한 태도를 비판했으나 이천수 때문에 당한 상처는 그만큼 컸다는 것도 생각해볼 대목이었다. 전남이 느끼는 ‘괘씸죄’의 무게는 주위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로부터 1년 뒤 임의탈퇴를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풀어줬으나 ‘용서’는 아니었다. 결국 전남의 2012년 행동은 선견지명이었다. 유사사례가 재발 했다.
그때 현명한 이들이 눈치를 챘어야했다. 진짜 미안하다면 그냥 사과하고 머리를 숙이면 됐을 텐데 이천수는 조건을 달았었다. 미안하고, 충분히 반성했으니까 이제 다시 써달라고 했던 것은 분명 ‘거래’였다. 진심어린 반성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했던 이천수다. 그렇게 돌아와 치른 복귀전이 지난 3월31일이었다. 개과천선을 선언하고 필드에 복귀한 지 7개월이 지나기 전에 못된 기질이 재발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진짜 안타까운 것은 팬들이 반응이다. 처음에는 ‘실망’과 ‘분노’였던 팬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 줄 알았다’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냥 등을 돌리고 있다. 타고난 축구재능과 흔치 않은 스타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천수가 결국 구제불능이 되는 모양새다.
어쩌면 핵심은 또 ‘거짓말’이었는지 모른다. 축구 선수도 사람이다. 술도 마실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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