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상대 수장은 이미 도발을 걸어오고 있다. 일종의 심리전이다. 실력발휘만큼 실수를 덜 하는 것이 중요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가장 멀리해야할 것이 ‘흥분’인 것을 감안할 때 백전노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노림수에 최용수 감독을 비롯한 FC서울 선수들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전쟁은 시작됐다.
FC서울과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2013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입장에서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첫 경기에 사활을 걸어야한다. 2차전(11월9일)은 없다는 배수진이 필요하다. 중국의 텃세를 생각할 때 무조건 이기고 원정을 떠나야 아시아를 호령할 수 있다.
백전노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노림수에 최용수 감독을 비롯한 FC서울 선수들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하다. 가장 피해야할 것은 흥분이고 필요한 것은 냉정이다. 사진= MK스포츠 DB |
하지만 사정은 달랐다. 서울은 이미 2주전에 광저우 구단 측에 경기 이틀 전에는 조명시설을 갖춘 훈련장을 내주기 어려우니 24일 오전에 입국하길 조언했다. 하지만 광저우는 24일 오후에 입국해 막무가내로 조명시설이 있는 운동장을 찾았다. 미리 조율이 된 이야기를 가지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밀어붙인 뒤 통하지 않으니 불만을 표한 것이다. 어쩌면 꼬투리를 잡기 위해 생떼를 부리려는 심산일 수도 있다.
이런 속사정을 리피 감독이 모를 리 없다. 자신의 표현대로, 지도자 인생 30여 년 동안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등 큰 무대를 수없이 누빈 리피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30년 지도자 인생을 통틀어 결승전을 앞두고 훈련을 제대로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처구니없다던 반응에는 분명 심리적인 싸움을 걸겠다는 포석이 들어있었다.
심지어 리피 감독은 자신이 묶고 있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안 되느냐는 의사를 전해왔다. ‘경기 하루 전 공식회견은 스타디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마련한다’는 AFC의 공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예정된 기자회견 시간보다 10분가량 늦고도 ‘굿모닝’이라 뻔뻔하게 인사하며 들어왔던 리피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많이 예의를 갖췄다. 지난 3월 전북과의 조별예선에서는 숫제 공식회견에 불참했다. 지도자 생활 30년 만에 그렇게 심하게 걸린 감기는 처음이었다는 변명이 있었을 뿐이다. 계산된 불평불만인지, 아니면 진짜 성품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다시 살살 긁어대고 있는 ‘늙은 여우’의 노림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최용수 감독은 일단 영리하게 받아쳤다. 리피 감독의 불만을 전해 들었다는 최 감독은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광저우에 가서, 국제 룰에서 1%라도 더 요구할 생각이 없다”면서 “우리는 광저우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냥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리피의 도발에 적절하게 응수했다. ‘설전’말고 ‘축구’로 승부하자는 대응이다.
최용수 감독과 서울 선수들이 지겹도록 곱씹고 임해야할 단어가 ‘평정’이다. 냉정해야한다. 마치 상대의 수준을 깔보는 듯한 리피의 발언에 휘말려 흥분하게 되면 외려 판을 그르치게 된다. ‘상대’를 너무 이기고 싶은 마음이 크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게 된다. ‘늙은 여우’의
중국에서 하도 돈을 많이 받아서인지, 아니면 유럽의 명장이라고 극진한 대우를 받아서인지 리피 감독의 행동과 말투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아시아 축구 전체에 대한 자존심도 걸린 문제다. 백전노장의 콧대를 꺾는 방법은 승리뿐이다. 적절한 승부욕만 취하고,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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