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농담입니다. 하하하.”
이병규(39, LG 트윈스, 9번)가 지난 21일 잠실구장 더그아웃에 걸터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껄껄 웃는 이유, “도대체 언제까지 뛸 겁니까?”라는 질문 하나 때문이었다. 돌아온 답변은 화끈했다. “지금 마음 같아선 50살까지 뛰겠어.” 이내 농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왠지 모르게 진지한 말보다 와닿는다. 우리나이 마흔에 타율 3할4푼8리를 기록하며 타격왕에 올랐으니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병규의 나이는 아직 숫자에 불과하다.
이병규(9번)는 LG 트윈스의 레전드를 넘어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전설을 쓰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이병규의 FA는 특별했다. 잔류 혹은 이적의 궁금증이 없었다. LG와 재계약은 기정사실이었고, 계약 조건 중에서도 기간이 최대 관심사였다. 이병규는 구단과 두 번째 만남서 5분 만에 웃으며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났다.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협상은 훈훈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병규는 올해 LG의 암흑 역사를 바꿨고, 프로야구 역사도 새로 썼다.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의 꿈을 이뤄내는데 앞장 섰다. 10연타석 안타, 최고령 사이클링 히트, 최고령 타격왕 등 쉽게 깨지기 힘든 새 기록을 작성했다. 당분간 마흔에 이런 기록을 쓸 선수는 없다.
이병규의 FA는 스토브리그의 뜨거운 이슈였지만, 정작 자신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FA는 현역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기회다. FA 대박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병규에게 FA는 단지 선수 생활을 연장하기 위한 계약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FA는 나에게 특별하지 않다. 그저 매년 하는 계약을 조금 미리 연장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3년을 미리 연장한 이병규는 2016년까지 뛴다. 그때 나이 42세로 최동수(41세 6개월20일)가 갖고 있는 역대 최고령 타자 기록도 경신할 수 있는 해다.
이병규 앞에 붙는 어쩔 수 없는 ‘나이, 마흔, 불혹’ 단어가 불쑥불쑥 계속 튀어 나오자 발끈했다. 그는 “자꾸 나이 얘기를 하는데 나이는 정말 신경을 쓴 적이 없다. 마흔이라서 심경 변화가 있는 것도 전혀 없다. 난 항상 똑같이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 더 많이 운동을 하거나 적게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했던대로 하면 된다”라고 강조했다.
애써 나이를 거부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나이다. 이병규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고 해도 부쩍 신경쓰는 것은 있다. 야구를 오래할 수 있는 몸과 앞으로 남은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타석 한 타석의 소중함이다. 그런 것을 느끼기 때문에 부상을 당했던 부분에 대해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있다”고 말했다.
이병규의 겨울은 바쁘다. 지금까지 완벽한 몸 관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운동을 시작한지 나흘째다. 이날도 땀에 흠뻑 젖은 채 나타났다. 조금씩 훈련량을 끌어올려 시즌 개막 때 최상의 몸을 만든다. 야구를 시작한 뒤 늘 해왔던 몸에 밴 습관이다.
그렇다고 운동만 주구장창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확실한 철학이 있다. 그는 “놀 때 놀고 할 때 해야 한다. 쉴 때 쉬지도 못하는 애들이 운동도 못하게 돼 있다”며 “11월까지는 휴식 기간이다. 그래서 지금 운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확실하게 놀고 있다”고 웃었다.
이병규는 이틀 동안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다. 시즌 종료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에 두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적었다. 최근 예능 ‘러닝맨’에 출연한 것도 두 아들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이 러닝맨을 정말 좋아한다. 애들한테 그게 최고다. 그래서 나갔다”고 했다. 녹화 현장에 두 아들을 데려가 함께 했다. 그는 “그것 때문에 그나마 지금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병규는 달콤한 휴식기를 마친 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한 달 이른 12월부터 2014시즌 시작이다.
이병규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모범 사례를 남기고 있다. 이미 LG의 레전드다. 하지만 “50살까지 뛸 수 있을 것 같다”던 그의 농담처럼 앞으로 그가 써내려갈 LG의 전설은 어디가 끝인지 모른다. 이병규이기 때문에.
[min@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