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회원권이 없는 골퍼들이 라운드 하기 무척이나 힘들었다. 회원제 골프장에 입장하려면 필히 회원과 동행을 해야 했고, 일부 규제가 약한 골프장조차도 회원의 추천서가 있어야 비회원끼리의 라운드가 가능했다.
만에 하나 날짜가 임박해서 라운딩 예약을 취소라도 하면 해당 회원은 다음 부킹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고 기상 악화로 라운드를 멈추더라도 18홀 그린피는 물론 전동카트비, 캐디피를 모두 지불해야 했다.
단체 연부킹이라도 하려면 골프장에 잘 아는 인맥이 있거나 웃돈까지 쥐어줘야 했으며, 클럽하우스 식당에서의 비싼 식사 및 프로샵에서의 구매 실적 등 1인당 그린피 이외에도 많은 소비가 있어야 좋은 시간대의 예약을 따낼 수 있었다. 매상이 낮으면 다음 해 연단체 예약 자격 심사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등 골프장의 슈퍼갑는 행태는 상당했다.
↑ 골프장의 난립으로 경영이 어려워짐에 따라 골퍼들의 위상이 높아졌다. 사진=MK스포츠 DB |
당시 골프장들의 수익은 일반 제조업체보다 서너 배 이상 다섯 배까지 높았다. 때문에 수익창출을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정부까지 나서 신규골프장 건설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현재 전국의 골프장 수는 500개가 넘은 상태다.
이들 중 상당수는 회원제 골프장이 아닌 대중제 골프장이다. 또한 제법 괜찮은 회원제 골프장들조차 대중제 골프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제는 회원권이 없어도 인터넷 회원만 가입하면 주말 부킹은 물론 가보고 싶은 골프장도 쉽게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수도권에서 조금만 멀어진다면 저렴한 그린피에 라운딩을 할 수 있으며, 시간대별, 요일별 할인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반면 회원제 골프장들은 더 이상 ‘갑질’이 불가능한 상태에 몰렸다. 경기가 하락하고 접대골프도 줄어들었으며, 대거 등장한 대중제 골프장이나 스크린골프까지 성행해 운영자체가 힘들어졌다. 회원권 거래 가격도 순식간에 추락하는 등 슈퍼갑에서 슈퍼을로의 전락이 진행되는 중이다.
한 대중제 골프장 CEO에 따르면 당일 부킹하고 당일 내장하는 골퍼들도 내장객 전체의 10%가 넘는다고 한다. 골프장에서도 나 홀로 골퍼족들을 유치하고자 홈페이지에 ‘조인게시판’을 운영하기도 한다. 부부 혹은 2인 플레이를 허용하는 골프장도 있다.
따뜻한 음료나 핫팩, 우산, 우비를 빌려주는 곳도 있고 4인이 오면 전동카트비 면제를 운영하는 골프장도 상당수다. 캐디가 부족한 골프장은 ‘노캐디 셀프카트를 운행’을 허용하며 우천으로 라운드를 중단할 경우 홀 별 요금을 정산하는 골프장도 증가추세다.
서비스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마일리지 시스템이나 핸디캡 계산 프로그램을 정착시킨 것은 물론 빡빡한 6분 간격 티오프가 아니라 7~8분 또는 10분 간격으로 여유 있는 플레이를 조장하고 있다.
경기시간이 지연되더라도 마샬(운영담당자)이 득달같이 달려와 종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어캐디(경기보조원) 역할에 충실해 자연스러운 경기 속개를 유도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골퍼와 골프장의 갑을 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그러나 골퍼들 역시 골프장들의 경영과 운영이 원활해야만 현재와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골프장들의 경영이 악화되거나 도산이 속출한다면 그만큼 공급이 줄어들어 예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비스 좋고 그린피도 저렴한 올해를 기회로 삼아 핸디캡을 낮춰보도록 하자. 비회원이이라도 전용회원처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지정 골프장을 한두개쯤 발굴해보는 것도 좋다. 애국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좋은 환경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상생의 씀씀이를 활용해야 할 시기다.
골프를 치는 한 골프장은 골퍼들의 또 하나의 자산이라는 점에 유의하고 좋은 환경을 유지시켜 나가는 의무도 골퍼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최영수 야디지코리아 회장 / 정리·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