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멕시코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태극전사는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패배야 경기를 하다보면 늘 있는 법이다. 지난 1년간 승리보다 패배(6승 4무 7패)가 더 많았던 태극호다. 그렇지만 이렇게 치욕스러운 패배는 없었다.
완패 그리고 참패였다. 경기 막바지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최선을 다하지 않는 플레이로 2골을 더 허용했다. 따가운 지적은 피하기 어려웠다. 브라질을 상대로 ‘태권축구’라는 오명을 들었을 때도,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높은 벽을 실감했을 때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긍정적인 걸 찾기 어려웠던 한판이었다. 공격도, 수비도 최악이었다. 경기 운영의 묘나 압박 능력도 아주 미흡했다. 전반 이근호의 돌파와 이명주의 헤딩 슈팅을 제외하고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했다. 어른과 아이의 대결처럼, 한국과 멕시코는 엄청난 레벨 차이가 느껴졌다.
↑ 홍명보호는 최근 A매치 3경기 연속 집 밖에 나가 치르고 있다. 앞선 2경기에선 극단적인 불리한 요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상대 팬의 응원이 더해진 멕시코전에서 좀체 힘을 쓰지 못했다. 사진=MK스포츠 DB |
그러나 어느 정도 감수를 했던 경기였다. 그리고 사실상 홍명보호 출범 이래 ‘진짜’ 첫 원정경기였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러시아전과 지난 26일 코스타리카전을 집 밖으로 나와 치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대비한 ‘원정 시뮬레이션’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바뀌는 환경 차이, 타이트한 일정에 따른 몸 관리 등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앞선 2경기는 ‘원정’이라는 불리함은 딱히 없었다. 관중석에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교민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장거리 이동 및 뒤바뀐 환경 적응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멕시코전은 달랐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5만4313명이었다. 알라모돔의 역대 축구 경기 최다 관중이었다. 멕시코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샌안토니오에는 거주하는 멕시코인들이 많다. 단순히 지역을 떠나 미국에서 열리는 경기에는 항상 멕시코 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그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한국에게 진정한 악조건을 안겼다. 한국 선수들로선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테다. 혼이 제대로 빠져나갔을 법한데, 그런 지옥과은 원정길은 2012년 10월 이란 테헤란 원정 이후 처음이었다.
이는 월드컵 본선에서 겪지 모를 일이다. 그 지옥의 맛을 제대로 경험한 홍명보호였다. 그리고 그 경험은 참혹했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상처도
한국 선수단은 멕시코전을 마치고서 다시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는 2일 미국과 평가전을 갖기 위함이다. 미국전은 중립 지역이 아닌 미국의 안방에서 치르는 경기다. 멕시코전과는 다른 또 하나의 ‘진짜’ 원정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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