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언니(드로겟)가 돌리는 진공청소기(에스티벤)를 주목하라.”
올해 외국인 선수 영입의 큰 기조는 ‘구관이 명관’ 쯤 되겠다. 전남의 스테보(전 수원) 인천의 주앙 파울로(전 대전) 울산의 알미르(전 고양) 등 과거 K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줄줄이 컴백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유나이티드의 두 선수가 특히 눈길을 끈다. 칠레대표팀 출신으로 전북에서 긴 머리를 휘날렸던 드로겟과 왕성한 스태미나를 바탕으로 2012년 울산 ACL 우승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한 에스티벤이 그 주인공이다.
↑ 언니 드로겟(사진)과 진공청소기 에스티벤이 제주에서 뭉쳤다. 다른 팀들의 경계대상 1호다. 사진= MK스포츠 DB |
에스티벤은, 그야말로 K리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팬들이라면 다 아는 ‘숨은 고수’였다. ‘일당백 플레이어’이자 ‘스태미나의 화신’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허리라인 근처에 공이 있다면 그 주위 어딘가에는 에스티벤이 있을 정도다. 왕성한 활동량과 저돌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숨통을 조인다. 그렇다고 마냥 힘으로 몰아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도 특별히 체력 저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판세를 읽고 뛰어다닌다는 뜻이다. 공의 흐름을 알고 차단하기에 파울이 많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공수의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췄음은 물론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한 미덕인 롱킥도 제법이다. 요컨대, 갖출 것을 다 갖춘 알짜배기 선수다. 2010년 울산에 합류, 3년간 헌신했던 에스티벤이 없었다면 ‘철퇴축구’라는 브랜드는 자리 잡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드로겟은 짧고 굵은 인상을 남겼다. 2012년 전북 소속으로 10골-9도움을 올리며 K리그 클래식 준우승에 기여했다.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드리블이 일품이었는데, 팬들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뛰는 모습이 마치 여자 같다며 ‘드로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인기도 꽤 높았다. 외국인 선수답지 않은 성실함도 지녔다.
당시 드로겟을 발탁했던 이흥실 감독(현 경남 수석코치)은 “처음 드로겟의 DVD 자료를 보고 체구는 작지만 순발력이나 활동량을 보고 놀랐다. 만약 수비가담 능력까지 포함한다면 드로겟이 에닝요보다도 낫다”면서 “국내에 있는 외국인 선수 중 드물게 수비가담이 뛰어난 선수”라는 말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을 정도다.
↑ 에스티벤(사진)은 울산 철퇴축구의 중심이었고 드로겟 역시 전북에서 짧지만 굵은 임팩트를 남겼다. 사진=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에스티벤은 “상대의 공을 끊어 내거나 패스가 성공할 때 팬들이 보내줬던 환호를 기억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함없는 에스티벤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친정팀이라고 봐주는 것 없다. 제주를 위해 꼭 이기겠다”는 말로 울산이 상대라도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전한 뒤 “우승은 언제나 품고 있는 최고의 목표다. 전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드로겟은 “부인과 다섯 아이가 모두 제주에 와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 가족의 힘을 얻어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북에서 리그 10골9도움을 기록했는데 그보다 더 많은 공격포인트를 내고 싶다. 제주가 2010년 리그 준우승 이후 더 나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올 시즌 다 같이 힘을 모아 큰 성과를 거두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제주유나이티드에게 2013년은 사실 자존심을 구긴 해다. 최소 ACL 진출권(3위 이내)을 노리고 시작했으나 결론은 하위그룹으로 밀린 9위였다. 망신살이었다. 때문에 일찌감치 과감한 투자와 절치부심으로 2014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날카롭게 다듬고 있는 무기들 중 주목해야할 것이 바로 드로겟과 에스티벤이다. 언니(드로겟)가 조종하는 진공청소기(에스티벤). 다른 팀들의 경계대상 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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