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10일(현지시간) 한국 선수단은 침울했다. 기대를 모았던 메달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쇼트트랙의 신다운(21·서울시청)도,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25·대한항공)도 입상에 실패했다. 다들 스케이트를 신고 열심히 빙상을 질주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불태우려 했건만, 돌아온 건 진한 아쉬움이었다.
그런 오빠들을 위로한 건 쇼트트랙의 ‘에이스’이자 ‘막내’ 심석희(17·세화여고)였다. ‘차세대 쇼트트랙 여왕’으로 평가받는 심석희지만, 17세 어린 소녀에게 살 떨리는 올림픽 데뷔 무대였다. 하지만 겁 없이 스케이트를 탔고, 가진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예선이긴 해도 500m와 3000m 계주에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선보였다. 대회 3관왕을 노릴 만하다는 평가대로였다. 화려한 데뷔였다.
500m 예선 경기는 심석희의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8조에 속한 심석희는 스타트가 늦어 맨 마지막에서 달려야 했다. 500m는 4바퀴 반만 돌면 레이스가 끝난다. 1000m, 1500m와 다르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역전극을 펼치기가 어렵다. 스타트만 잘 해도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데 뒤로 밀렸으니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석희는 혼자 힘으로 ‘원하는 그림’으로 돌렸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스퍼트를 내 2명을 가볍게 추월하며 2위로 통과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무서운 스퍼트였다.
↑ 겁 없는 17세 여고생이다. 올림픽 무대지만 중압감은 없었다. 사진(러시아, 소치)=옥영화 기자 |
출발이 순조롭다. 고비도 가벼이 넘기면서 순풍을 탔다. 우울한 소식이 가득했던 빙상대표팀에 날아온 ‘낭보’였다. 자신만만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10대 여고생은 늠름하고 믿음직했다. 힘 빠진 오빠들을 웃게 만드는 여동생의 ‘파이팅’이자 ‘애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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