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유서근 기자]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스스로 악수(惡手)를 둬 흥행가도에 비상이 걸렸다.
KLPGA는 최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 후 최고의사결정권자인 구자용 회장의 사퇴설이 갑작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구 회장 사퇴설의 진위여부는 밝혀지겠지만 사퇴설의 배경이 더 문제다.
KLPGA는 지난해 말 SBS골프를 2014년부터 3년간 투어 KLPGA 투어 중계권자로 선정했다. SBS골프는 세마 컨소시엄과 함께 가장 높은 금액을 적어냈고 협회 발전에 대한 공헌도에서 앞서 1위 업체로 뽑혔다.
이로써 KLPGA는 연간 48억5000만원(선수 복지기금 3억5000만원 포함)씩 3년간 총 145억5000만원을 SBS골프로부터 받게 됐다. SBS골프는 KLPGA투어 중계를 위해 제작비용까지 합쳐 연간 100억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투입해야 한다.
국내 양대 골프채널인 J골프와 SBS골프의 지난해 광고수입 총액은 400~450억원 선이다. 양분할 경우 200~220억원 규모다.
SBS골프가 KLPGA투어 중계를 위해 광고 단가를 올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럴 경우 KLPGA투어 중계 때 광고를 해야 하는 국내 골프관련 업체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계권 획득에 실패한 J골프는 광고 영업을 위해 킬러 컨텐츠인 KLPGA투어의 재판매가 간절한 입장이다. J골프 측은 중계권 입찰 때 SBS골프와의 공동 중계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계권 획득에 실패해 광고 수주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구 회장의 사퇴설은 여기서부터 발단됐다. 구 회장은 SBS골프 측에 KLPGA투어 중계의 재판매를 타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1그룹이란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구 회장은 국내 유수의 언론 매체인 중앙일보, JTBC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구 회장은 또한 최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동생인 홍석조 보광그룹 회장과 사돈을 맺어 오해를 사기 쉬운 처지가 됐다. 회장 사퇴만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란 선택을 했을 수 있다.
물론 KLPGA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중계권자를 선정한 만큼 외부의 압력에 흔들려서는 안 되겠지만 그 전에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사들이 협회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눈앞에 떨어진 금덩어리’에 눈이 먼 KLPGA의 어리숙한 결정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회를 개최하는 후원 회사와 선수들에게 돌아가게 됐다.
지난 3년간 KLPGA 투어는 양대 골프채널의 동시 생중계로 인해 대회수와 상금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골프마케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 투자 대비 효과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회 후원사는 한 방송사의 중계로 홍보효과가 급감되는 것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원 회사의 한 관계자는 “홍보 효과가 반 이상 없어질 것이 자명하다. 지속적인 대회 개최를 계획했지만 대회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년에 비해 대박 소식이 잠잠해진 선수들의 스폰서 계약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그동안 골프 마케팅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던 기업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훈풍이 가득했던 골프 스토브리그에 찬바람이 불어온 상황에서 홍보효과까지 줄어들어 메인 계약을 맺지 못하는 선수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KLPGA는 지난해 말 음주 측정 거부 후 경찰관에 폭행과 욕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이정연(35)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비상식적인 탁상행정으로 또 하나의 악수를 뒀다.
KLPGA 상벌위원회는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행위로 사회에 물의를 야기하거나 회원의 품위를 실추시킨 경우’를 들어 이정연에게 2년간 자격정지, 벌금 1000만원의 중징계를 내렸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벌금 1000만원에 3개월 자격정지로 징계를 감해줬다.
이에 반해 경기 중 판정 번복으로 경기위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한 선수에게 징계를 내리는 조치로 ‘선수 길들이기’에 나선 협회는 ‘동업자 정신’을 잃어버린 중계권 계약으로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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