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호주, 시드니) 서민교 기자] ‘스승’ 구대성(45‧시드니 블루삭스)과 ‘제자’ 류현진(27‧LA 다저스)이 18일(이하 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드디어 재회했다.
구대성과 류현진은 18년차 선후배로 한화 이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 특히 구대성이 류현진의 체인지업 스승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으로부터도 큰 관심을 모았고, 류현진은 “호주에 가면 꼭 구대성 선배를 만나고 싶다”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 구대성과 류현진이 호주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재회했다. 류현진이 동료인 J.P. 하웰에게 "이 분이 체인지업을 가르쳐준 대단한 스승"이라고 전하자, 하웰이 90도로 인사를 한 뒤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호주, 시드니)=김영구 기자 |
류현진은 오는 23일 SCG에서 열리는 미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개막전 선발 등판을 위해 호주 땅을 밟았다. 구대성은 지난 2010년부터 호주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처음으로 호주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 상대로 나선다.
▲ “현진이 습득력이 빠른 거죠”
이날은 다저스의 훈련이 열린 뒤 호주대표팀의 훈련이 잡혀 있었다. 구대성은 류현진의 호주 입국 소식을 듣고 유니폼을 갈아입기도 전에 그라운드로 나서 애틋한 후배를 먼저 찾았다.
마흔을 훌쩍 넘긴 배테랑 투수인 구대성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보인 류현진은 부쩍 성장해 있었다. 구대성은 류현진과 잠깐 재회 후 호주대표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다시 그라운드로 내려가 류현진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의 대화는 커브에 관한 것이었다.
구대성은 류현진의 스승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워 했다. 구대성은 “현진이가 습득력이 빨라서 된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 “내가 잘 가르쳐주고 못 가르쳐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현진이가 자기 것을 빨리 만든 것”이라며 “난 공을 잡는 방법만 가르쳐줬다. 공은 둥그니까 돌려가며 자기 것을 찾은 것”이라고 겸손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생각은 어떨까. 류현진은 “내가 잘 배워서 잘 던진 것 같다”라며 너스레를 떤 뒤 “야구 뿐 아니라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다시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갑다”라고 전했다. 구대성도 “현진이 체인지업과 내 체인지업은 다르다. 공이 빠른 사람이 던지는 것과 느린 사람이 던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웃으며 ‘청출어람’ 류현진을 인정했다.
구대성은 류현진에 대한 소식을 이미 기사를 통해 접하고 있었다. 구대성은 “현진이 기사를 보니까 커브가 잘 안된다고 하더라. 오늘 만나서도 커브가 자꾸 빠진다고 했다”며 “그래서 만나자마자 커브 이야기부터 했다”고 말했다. 못 말리는 스승이 맞다.
구대성은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류현진에게 커브 그립부터 상세하게 설명했다. 직접 공을 잡는 법을 선보이며 비법을 전수했다. 류현진도 진지하게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구대성은 “나도 커브를 잘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선수들이 잘 던진다. 그걸 배웠기 때문에 얘기를 좀 해주려고 했다”며 “훈련으로 시간이 없어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이다. 어차피 현진이는 습득이 빠르니까”라고 후배를 향한 든든한 신뢰를 보냈다.
↑ 구대성이 류현진에게 커브에 대한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사진(호주, 시드니)=김영구 기자 |
구대성은 호주프로야구에서 활약한지 4년 만에 호주대표팀 유니폼까지 입는 영예를 누렸다. 구대성은 이미 호주에서 마무리 에이스로 유명인사다. 어린 선수들의 코치 역할까지 하면서 호주 야구의 전도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구대성은 2005년 뉴욕 메츠에서 활약하기도 한 메이저리그 출신. 호주에서 처음으로 맞는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새로울 법도 하다. 그러나 구대성은 크게 감회가 새롭진 않은 듯했다.
구대성은 “여기서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다고 해서 감회가 새로운지 그런 건 모르겠다”며 “호주에서는 야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도 많이 한다. 이번 게임을 통해 호주에서 많이 알려지고 하면 좋은 것 아니겠냐”고 웃었다.
구대성이 호주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은 구단의 제안 때문이다. 구대성은 “미국과 연습경기를 하는데 대표팀으로 뽑으면 하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대표팀을 하겠다고 흔쾌히 말했다”고 했다. 이미 태극마크를 달았던 그에게 호주대표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구대성은 “처음 호주대표팀으로 나가돼 기쁘다. 하지만 예전 메이저리그나 일본, 한국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처럼 그런 느낌은 사실 없다”고 솔직하게 심정을 말했다.
그러나 구대성은 20, 21일 다저스, 애리조나와 두 차례 연습경기에 나서는 각오는 남달랐다. 구대성은 “여긴 나보다 다 젊은 선수들이고 공도 빠르고 잘 던진다”라면서도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해 던질 생각이다. 내가 지금 스피드가 나오는 선수도 아니고 내 공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던지려고 한다”고 각오를 전했다.
구대성은 류현진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후배들이 해외로 진출해 잘하면 당연히 나도 기분이 좋다”며 “현진이는 1년을 경험했으니까 지금처럼 자신 있게만 하면 더 좋아질 것 같다. 공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자기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구대성과 류현진은 없는 시간을 쪼개 식사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구대성은 “밥 한 끼는 사주려고 했더니 시간이 잘 맞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고, 류현진은 “한 번은 꼭 밖에서 만나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둘의 못 다한 야구 이야기는 호주에 있는 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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