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1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는 또 한 편의 짜릿한 드라마가 펼쳐졌다. 먼저 2골을 허용한 포항이 놀라운 투지를 발휘하면서 2-2 무승부를 일궈냈다. 필승을 다짐했던 황선홍 감독의 출사표를 감안한다면 크게 고무될 결과는 아니지만, 과정을 안다면 박수가 아깝지 않다.
신광훈이 퇴장 당한 것이 전반 12분이다. 의도적인 핸드볼 파울이라는 판정과 함께 PK로 실점을 내줬다. 11분 뒤 또 다시 PK를 허용했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크로스를 막아서던 김재성의 손이 공과 닿았다는 애매한 판정이었다. 일찌감치 2골을 내준 상황에서 무려 65분가량을 10명에서 싸워야했으니 포항으로서는 답답했다.
↑ 2골을 먼저 내준 상황에서 10명이 싸웠음에도 무승부를 일군 포항의 투지는 놀라웠다. 경기력도 훌륭했다. 그래서 더욱 씁쓸함이 드는 포항의 현실이다. 사진= MK스포츠 DB |
포항의 힘은 자못 놀라웠다. ACL과 정규리그를 병행하는 강행군으로 가뜩이나 체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10명이 1명의 빈자리를 나누면서 더 뛰어야했으니 육체적 고통은 더 심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리자 보다 강한 정신력이 나왔다.
2골을 허용한 뒤 경기의 주도권은 완전히 포항이 잡고 있었다. 산둥이 안일한 대처를 한 영향도 있었으나 포항의 경기력이 좋았던 이유가 더 크다. 포항 특유의 짧은 패스로 몰아치는 ‘스틸타카’가 빛을 발하면서 계속해서 골 찬스를 만들어냈고, 결국 전반 32분 김태수의 만회골과 후반 35분 김승대의 동점골로 승리만큼 값진 승점 1점을 따냈다.
역시 지난해 K리그 클래식과 FA컵을 동시에 거머쥔 팀다운 저력이었다. 챔피언다운 플레이를 보았기에 또 아쉬움이 남는 2014년의 포항이다. 그 얇은 선수층으로, 여전히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는 스쿼드로 이정도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으니 부질없는 일임에도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수준급 골잡이의 부재다. 2골을 모두 따라잡기는 했으나 포항은 찬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비해 결정력이 확실히 떨어졌다. 고무열과 문창진 등이 거의 일대일 찬스와 같은 기회를 잡고도 마무리가 부족해 골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은 황선홍 감독의 고민과 궁극적으로 맞닿아 있는 상징적 장면이다. 제대로 된 외국인 공격수 1명만 있었어도 황 감독의 운영은 더 수월했을 것이다. 선수들의 피로감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선수들의 무게감도 많이 떨어졌다. FA로 풀렸으나 팀과 재계약에 실패해 포항을 떠난 박성호(8골) 노병준 황진성(이상 6골)이 지난 시즌 합작한 골(정규리그 기준)이 20골이다. 포항이 지난 시즌 기록한 전체득점(63골)의 1/3에 해당한다. 올해 같은 활약을 한다는 보장은 없으나 어쨌든 화력은 또 반감됐다. 이제는 간판선수가 된 이명주를 비롯해 지난해 영플레이어상에 빛나는 고무열 그리고 김승대와 문창진 등 젊은 선수들의 일취월장이 공백을 메워주고 있으나 가시밭길은 불가피해 보인다.
황선홍 감독과 포항의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는 ACL 제패다. 현실에 대한 투자는 없는데 이상적인 결과만 바라고 있는 포항이다. 투자가 없으면 성적도 없는 것이 프로의 생리다. 없는 살림에서 지난해 더블을 달성했으니 올해도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은 어리석다. 상대는 포항에 대해 철저히 파악했고, 포항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동기부여가 떨어졌다. 같은 상황이 아니다.
관중석도 포항 구단은 눈여겨봐야한다. 산둥 루넝과의 경기가 열린 18일 저녁, 스틸야드에 모인 관중은 5,368명에 불과했다. 언뜻 중국에서 원정 온 팬들이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지난해 보여준 매력적인 경기력과 최종전에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장면 등 올해 포항은 팬들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홈구장 스틸야드도 개보수를 마쳤다. 그런데 팬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포항스틸러스가 힘겹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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