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전주) 임성일 기자] 흔히들 축구를 전쟁에 비유한다. 공 하나를 두고 22명이 몸을 섞는 축구는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이다. 공이라는 먹잇감을 두고 치열한 투쟁이 펼쳐지는 곳이 축구장이다.
‘축구는 곧 전쟁’이라는 명제가 참임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경기가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전북이 광저우를 상대로 원초적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줬다. 10명이 싸우고도 결국 전북은 광저우를 1-0으로 꺾었다. 전장은 종료휘슬과 함께 천국으로 변했다. 이것이 축구였다.
↑ ‘축구는 곧 전쟁’이라는 명제가 참임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경기가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전북이 광저우를 상대로 원초적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줬다. 사진(전주)= 옥영화 기자 |
전반 14분 경합과정에서 광저우 선수가 하나가 쓰러졌으나 전북 선수들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3000명 광저우 팬들은 야유를 보냈고 광저우 벤치의 리피 감독은 최강희 감독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항의했다. 하지만 전북 팬들은 맞받아쳐 야유를 잠재웠고, 최강희 감독은 리피를 향해 더 강하게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받아쳤다.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이 경기는, 어설픈 동정 따위가 개입될 수 없는 전쟁임을 선포한 셈이다.
거친 몸싸움이 난무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담그기’ 개념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거칠었음에도 휘슬이 잘 울리지 않았다. 그만큼 집중력이 높았다는 방증이다.
체력소모가 상당히 심한 경기 운영이었다. 최전방 이동국부터 수비수였고 센터백 김기희와 윌킨슨이 공을 잡는 위치도 상당히 높았다. 자연히 뛰는 양이 많았고, 전반 30분 이후부터는 파울이 날 때마다 벤치로 와서 물을 먹는 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광저우 선수들도 벅차긴 마찬가지였다. 각오했던 운영이다. 이 경기가 결승전이자 시즌 마지막 경기라는 자세로 임했다.
절대 수비에 치중한 운영이 아니다. 전반 37분 레오나르도의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이동국이 머리로 방향을 바꾸는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아쉬운 장면을 포함해 전북은 여러 차례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 중앙에 이동국을 중심으로 좌우측 한교원과 레오나르도가 크게 흔들면서 기회를 만들었고 2선에서 이재성과 정혁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포백과 김남일 정도를 제외한다면 언제든지 광저우 진영으로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동국도 김남일도, 레오나르도나 정혁도 보이지 않았다. 광저우전에서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전북 선수’ 11명이 뛰었을 뿐이다. 관건은 후반에도 전반과 같은 체력과 투지가 유지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최강희 감독과 전북 선수들은 요동 없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리피 감독이 2명의 선수를 교체한 것과 달리 전북은 전반 그대로 후반을 임했다.
전술적 변화는 없었다. 레오나르도가 최종 스위퍼처럼 전북진영 박스 안으로 들어가 공을 걷어 내다가 광저우 진영 왼쪽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날렸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모두가 ‘11명’으로 똑같이 뛰었다는 뜻이다. 후반 16분 한교원이 오른쪽을 돌파한 뒤 낮고 빠르게 올린 크로스를 이동국이 정확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됐으나 오른쪽 포스트를 때리는 불운이 있었다. 후반전도 주도권은 전북이었다. 전주성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기고 싶다’는 모든 이의 바람이 녹색 빛으로 경기장을 떠돌았다. 지칠 줄 모르는 전북 선수들의 투혼과 팬들의 열정에 디펜딩 챔피언 광저우는 여러 차례 패스미스를 보였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이다. 이때, 안타까운 변수가 발생했다. 후반 21분, 미드필더 정혁이 상대 공격을 차단하다 파울을 범해 옐로카드를 받았다. 전반 43분 이미 카드 1장을 받았던 정혁이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면서 전북은 난관에 봉착했다.
똑같은 운영은 어려웠다. 1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흐름은 광저우 쪽으로 넘어갔다. 무조건 압박을 취할 수 없던 상황이다. 불가피하게 수비적으로 운영하면서 역습을 노려야했다. 체력적인 부담이 축적된 시간이기에 실마리가 쉽지 않았다. 이때, 피가 솟구칠만한 장면이 연출됐다.
후반 30분 이재성이 하프라인 아래에서 로빙 패스를 전방으로 투입했고 왼쪽 측면을 파고들던 레오나르도가 떨어지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광저우의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의 백미였다. 이후 전북 선수들은 그야말로 온몸을 내던져서 광저우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다리에 경련이 나도 끝까지 그들은 ‘11명’이었고 결국 치열한 전쟁의 승리자가 됐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달 18일 광저우 원정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과 함께 1-3 패배를 당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런 식이라면 광저우를 이길 팀은 없다”는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다음에 전주에서 이 경기에 대해 복수해주겠다”는 말로 굳은
전북과 광저우 경기는 TV로 중계되지 않았다. 이 아름다운 경기를 보지 못한 축구팬들이 많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주성에 모인 모든 이들이 이 전쟁의 승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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