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정황은 모른다. 저간에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너무 섣부른 결정이었다.
김기태 LG 트윈스 감독의 갑작스런 사임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어서가 아니다. 그를 야구판에서 떠나보내기 너무 아까워서다.
그 동안 김기태 감독이 혼자 짊어지고 가야했던 짐을 안다. 거기가 어딘가. 유난스럽기로 소문난 LG 아닌가. LG 트윈스 감독 자리를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감독보다 더 야구를 많이 아는’ 구단주 일가들이 한 경기, 한 장면마다 훈수를 둔다. LG 트윈스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한 경기만 져도 들불처럼 일어나 욕지기를 해댄다. 김기태 감독은 지난 해 팀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려놓고도 일부 팬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올 시즌에도 초반부터 이상 하리 만치 꼬이면서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안 봐도 훤할 것 같다. 야구 마니아 구단 오너 일가들은 김기태 감독에게 번갈아 가며 한 마디씩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비수로 다가가는지 모르고. 팬들은 오죽했는가. 김기태 감독을 대역죄인 취급하면서 몰아 붙였다.
김기태 감독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야구에 대한 자부심도 매우 강하다. 2000년대 초반 삼성 선수시절엔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김응용 당시 감독 집에 홀로 찾아가 그 이유를 따져 물었을 정도다. 쌍방울에서 뛰던 신인 시절엔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이 김기태 감독만은 기술적인 부분에서 간섭하지 않았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다. 김성근 감독은 일찌감치 김기태 감독의 ‘야구 자존심’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기태 감독이 LG 사령탑에 오른 뒤 LG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굳이 ‘형님 리더십’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모래알 팀워크’라고 조롱받던 그 팀이 아니었다. 그 동안 LG를 거쳐 갔던(불명예 퇴진했던) 다른 감독들과는 달랐다. 선수들의 존경을 받았다. 일찍이 LG에 이런 감독은 없었다.
지금 LG는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예상 밖의 부진한 성적에 선수들도 몹시 당황하고 있다. 이런 차에 지휘봉을 잡고 있는 감독이 스스로 팀을 떠나는 것은 ‘직무유기’다. 다행히 LG 구단은 아직 김기태 감독의 사직서를
늦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자진사퇴 의사를 철회하기 바란다. 다시 LG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많은 야구인들과 야구팬들은 김기태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
[매경닷컴 MK스포츠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