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1차 협상 마감일인 15일 오후. FA 대어급 선수들이 수억원대 재계약과 트레이드로 농구판을 들썩였다.
그 사이. 그 누구보다 짧고 굵게 화려한 농구 인생을 살았던 ‘천재 가드’가 조용히 코트를 떠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FA 시장이 열릴 때면 늘 최대어로 꼽히며 수많은 사건사고를 몰고 다니곤 했다.
↑ "천재 가드" 김승현이 26년 정든 농구 코트를 떠난다. 김승현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사진=김영구 기자 |
팬들의 기억 속 김승현은 ‘천재’와 ‘악동’이 공존한다. 그러나 김승현은 2001-12시즌 프로농구 사상 첫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하며 2002 부산아시안게임 기적의 금메달을 따낸 가드, 코트에서 농구공 하나로 신나게 즐겼던 ‘천재 가드’의 색이 더 짙은 색으로 덧칠되어 있지 않을까.
김승현의 두 번째 팀이자 마지막 팀이었던 서울 삼성에서 공식 은퇴를 발표한 뒤 강남의 한 카페에서 김승현을 만났다. 편안한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의외로 밝은 표정이었다. 은퇴의 아쉬움보다는 또 다른 농구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그의 은퇴 결정 첫 마디이자, 선수로서 마지막 말은 이랬다. “나 이제 그만 해야 될 때가 된 것 같아. 맞지?”
↑ 김승현은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미래의 농구 꿈나무들에게서 김승현의 매직 패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사진=김영구 기자 |
삼성에서 결별 통보를 한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지금 내가 FA 시장에 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상민 감독님과 이성훈 단장님께 “선수로 날 원한다면 1년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면 다른 팀으로 가고 싶진 않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다.(웃음)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 갑자기 결정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시즌 끝나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 진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상민 감독으로 바뀌면서 한편으론 좋은 쪽으로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구단 세대교체로 방향을 잡으면서 생각을 더 하게 됐다. 지금 은퇴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쉬울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나.
▲ 은퇴 결정 직후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나.
오늘 낮에 문뜩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농구를 지금껏 하면서 나를 가르쳤던 은사들이 생각이 나더라. 전규삼 할아버지(전 송도고 감독)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이젠 돌아가셔서 내가 은퇴했다고 알릴 방법이 없더라. 고교 때 가르쳐 주셨던 박재수 감독님과 동국대 시절 서대성 감독님과 최성오 감독님이 생각이 났다. 오늘이 스승의 날인 줄도 몰랐다. 연락을 해서 그동안 못했던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다른 것보다 이런 생각들을 했다.
▲ 이제 그렇게 좋아하던 농구는 못한다. 솔직한 지금 심정이 궁금하다.
나 말고도 모든 농구 선수들이 은퇴를 한다. 누구나 나이가 차면 은퇴를 하는 거 아닌가. 나이가 많은데도 더 잘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거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주)희정이 형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은퇴를 일찍 한 유명한 선수들도 많지 않나. 유재학 감독님도 계시고…. 그래서 아쉬움은 없다. 이미 결정을 했고, 이젠 다른 길로 가야할 때다.
▲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더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은퇴를 했겠나.
삼성에서 1년을 더 하자고 했으면 분명히 했을 것이다. 이상민 감독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여러 가지 방면에서 눈을 떠서 했을 텐데…. 또 우리 후배들도 가르치면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아쉽긴 하다.
↑ 김승현이 돌아본 김승현은 "짧지만 화려했던 선수"였다. 사진=김영구 기자 |
신인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농구 선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우승이란 걸 해 봤고, 상도 많이 타 봤다. 신인상과 MVP 동시 석권도 처음으로 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땄다. 그렇게 폭풍처럼 12년의 세월이 지나간 것 같다. 행복했던 일도 안 좋았던 일도 많았는데, 그게 다 ‘내 업이구나’라고 생각한다.
▲ 전성기가 짧고 굵었다. 몸 관리를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내가 이미지나 보기와는 다르게 몸 관리를 못하는 선수는 아니다. 비시즌 땐 항상 철저히 준비를 했다. 특별히 무릎이나 발목을 수술하는 경우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부상은 당할 수 있고 노쇠화가 된다. 그래서 안 좋은 부분을 많이 보완하려고 노력했다. 작년에도 체지방을 7kg이나 빼면서 몸이 가볍고 좋았다. 농구 선수는 경기를 많이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아쉬운 것이다. 그런데 그건 다 내 욕심이었다. 또 팬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나도 승부욕이 강하다. 내가 쇼타임 하러 코트에 나가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나를 싫어했던 팬들도 그런 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 은퇴 후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뭔가.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휴식을 갖고 싶다. 그러면서 뭘 하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을 하고 싶다. 일단은 농구 쪽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 언제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를 부르는 구단이나 학교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
▲ 지도자를 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 난 선진 농구를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예전에 미국 대표팀과 경기를 한 번 해보긴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선진 시스템을 느끼고 보고 싶다. 미국에 외가 친척들이 많다. LA와 뉴욕 등에 많이 사신다. 이번 기회에 못 봤던 분들도 보고 싶다. 연줄이 닿는다면 직접 경험도 해보고 싶다. 과거 마이클 조던을 17년 동안 트레이닝을 했던 분한테 시카고에서 한 달 동안 배운 경험이 있다. 그 해 득점과 어시스트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그래서 선수가 아닌 다른 시선으로 더 느껴보고 싶다.
▲ 지도자 김승현은 상사이 잘 안 된다. 철학은 있나?
굉장히 재밌는 농구를 할 것 같다. 관중들한테도 많이 사랑받는 팀을 만들고 싶다. 팬이 있어야 프로 스포츠 아닌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어린 선수들한테 모두 공개하고 가르쳐주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승현 농구가 가르친다고 되는 건가.
중‧고교 선수들을 보면 충분히 가르치면 잘 될 선수들이 많다. 천재라는 것은 정말 노력 없인 불가능한 것이다. 노력 없이 천재가 될 순 없다. 누구나 어렸을 때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날 가르쳤던 은사님들처럼.
↑ 김승현은 현역 선수 은퇴 전 서장훈, 김주성, 현주엽, 하승진과 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김영구 기자 |
짧지만 화려했던 선수.
▲ 항상 ‘천재 가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말은 정말 부담스럽다. 천재 가드라기보단 남들보다 조금, 패스 하나만큼은 잘했던 그런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봤을 때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사람이 천재인 것이다. 한국에 천재 가드가 있다고 하면 조던이 웃을 일이다.
▲ 같이 해보고 싶었던 선수는 있었나.
서장훈. 그리고 김주성, 현주엽, 하승진이다. 대표팀에 있을 때 워낙 호흡이 잘 맞았다. 하승진과 함께 뛰면 정말 편했다. 이젠 못할 선수들이지만….
▲ 김승현을 추억할 팬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나를 좋아했던 팬들은 아쉬워할 텐데, 이젠 농구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다시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정말 나와 함께 12년의 순간을 같이 했던 팬들에게 정말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어려웠을 때 응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됐다. 어쩌면 ‘난 복 받은 놈이었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화려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게 돼 많이 미안하다.
▲ 안티 팬들도 많다. 알고 있지 않나. 한 마디 해 달라.
안티 팬도 다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웃음) 그동안 많은 질책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 이제 정말 선수로는 끝이다. 김승현이 김승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 은퇴 축하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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