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브라질 쿠이아바) 이상철 기자] 독불장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세 가지 뜻이 있다. 1) 무슨 일이든 자기 생각대로 혼자서 처리하는 사람, 2) 다른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는 외로운 사람 3)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어 남과 의논하고 협조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 같은 단어이지만 전혀 다른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독불장군은 한국이 18일(이하 한국시간) 상대할 적장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감독의 별명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러시아에서 ‘이방인’이다.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 및 딕 아드보카트 감독처럼 그를 향한 러시아의 시선이 항상 곱지 만은 않다.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 가운데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데, 그에 따른 러시아 지도자의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 17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 및 훈련 내내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표정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브라질 쿠아이바)=김영구 기자 |
자신만의 철학을 고수하는데 특히 선수단 관리가 철저하다. 언론 및 가족, SNS 통제까지 선수들을 울타리에 가둬두고 자신이 하라는대로 해야 한다. 자연스레 고집불통의 할아버지로 보이기 십상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인근 이투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뒤 브라질월드컵 본선 준비를 진행했는데 철저하게 관리 감독했다. 언론의 동선을 바꿔 선수와 접촉을 최대한 피했고 비공개 훈련이 일쑤였다. 그의 지도 방식은 절대 개방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그의 본래 모습은 아니었다. 고집불통의 할아버지가 아닌 위트 넘치는 할아버지였다. 그의 피는 분명 여유까지 가득한 이탈리아인이었다.
한국과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를 하루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카펠로 감독은 재치 넘치는 답변으로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언론을 배꼽을 잡았다. 다소 경직되고 딱딱할 수 있는데, 이 세계적인 명장에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카펠로 감독은 특히 자신의 지도 방식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자, 불쾌해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선수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정했다. 카펠로 감독은 “SNS라는 게 제대로 쓰지 않으면 때론 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월드컵이 열리는)한 달 동안만 자제하라고 했을 뿐이다. 아마 월드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미친 듯이 SNS를 하지 않겠냐”라며 미소를 지었다.
쿠이아바의 습하고 더운 날씨에 대한 준비가 소홀한 것 아니냐는 불평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그 질문을 한 기자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카펠로 감독은 “당신은 브라질에서 살고 있나. 아니지 않나.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을텐데 왜 우리가 훈련할 때 기온이 섭씨 32도로 쿠이아바보다 더 덥다는
콧대 높은 자세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뻔뻔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이를 절대 자만심으로 잇지 않았다. 날카로운 한마디를 해도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지 않는 ‘위트’가 돋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절대 딱딱하지 않았고, 범접하기 어려운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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