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올해도 박병호(28·넥센)의 상징은 홈런이다. 풀타임 첫해였던 2012년 31개의 홈런을 날리며 첫 홈런왕에 등극한 그는 지난해에는 37개를 터트려 한층 업그레이드된 활약상을 보였다. 2012년에는 홈런외에도 타점, 장타율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타격 3관왕에 올랐던 박병호는 지난해 득점 타이틀까지 추가, 타격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는 더 무시무시하다. 69경기를 치른 현재 29개의 홈런으로 쏘아 올렸다. 이를 128경기로 환산하면 대략 54개의 홈런을 기록한다는 얘기다. 6월초까지만 하더라도 60홈런 페이스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60홈런은 불가능해보였지만 5월 14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이승엽(삼성)이 가지고 있는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경신에 도전장을 내민 모양새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로 가세한 외국인 타자와의 홈런 경쟁은 프로야구의 흥행카드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박병호는 홈런에 관한 얘기가 조심스럽다. 그는 항상 “홈런을 의식하지 않는다. 팀 승리가 더 중요하다”며 “외국인 타자들에게 많이 배우겠다”고 겸손하게 말할 뿐이다. 그런 박병호와 풀타임 3년 차 4번타자와 홈런에 대해 물어봤다.
↑ 박병호의 시즌 목표는 자신보다는 팀이 우선이다. 이런 이유로 박병호에게 몇개의 홈런을 치겠다는 얘기를 듣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진=MK스포츠 DB |
▲ 홈런은 팬들을 위한 선물
지난해 박병호는 만화 주인공이 됐다. 그가 말한 만화 같은 장면은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말 2아웃. 박병호는 0-3으로 끌려가던 주자 1,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상대 투수 저스틴 니퍼트의 4구째를 타격해 중견수 뒤로 넘어가는 비거리 125m 동점 스리런 홈런을 때려내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비록 연장 접전 끝에 두산에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박병호의 해결사 본능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당시 박병호는 “내 홈런에 피로가 플렸다는 아저씨의 얘기를 듣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괴력의 홈런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올해 역시 박병호는 자신의 홈런에 열광하는 팬들이 고맙기만 하다. 박병호는 “시즌 전 외국인 타자의 가세로 많은 홈런이 나와 팬들이 더 즐거워할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역시 예상대로”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실 홈런을 치고 팀이 경기에서 지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지만, 팬들이 홈런 하나에 환호하는 것을 보면 홈런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홈런을 치고 이겨야 기분이 좋다. 이기는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홈으로 들어올 때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5월 14개의 홈런에 이어 6월10일까지 7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무시무시한 홈런 페이스를 보였던 박병호는 이후 16일 동안 홈런을 생산하지 못하며 체력적으로 지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다. 다만 타격이란 게 항상 좋을 수 없다. 타격 사이클에 관한 부분인 것 같다”며 개의치 않았다. 결국 박병호는 홈런으로 보여줬다.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시즌 28호 홈런을 쏘아 올린데 이어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29호포를 터트리며 3년 연속 30홈런에 1개만을 남겨뒀다. 박병호는 “몇 개의 홈런을 치겠다는 목표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팬들을 위한 홈런 선물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 목동홈런왕?…비거리를 보라
박병호의 홈런 퍼레이드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많지만, 다소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들은 박병호가 유독 넥센의 홈인 목동구장에서 많은 홈런(29개 중 20개)을 치는 것에 대해 “상대 적으로 펜스가 짧은 목동구장의 덕을 보는 것 아니냐”며 ‘목동홈런왕’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박병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런 시선이 있는 것 잘 알지만 신경 안 쓴다”며 “홈이건 원정이건 그날 컨디션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홈이 더 익숙하다. 박병호는 “분명히 원정을 가서 경기를 하는 것 보다 홈에서 하는 게 편한 측면이 있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나, 루틴 등도 홈이 더 익숙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병호의 홈런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비거리다. 빠른 페이스도 올 시즌 박병호 홈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어마어마한 비거리다. 29개 중 19개가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의 홈에서 중간펜스 거리인 125m 이상이었다. 지난 5월8일 목동 NC전에서는 비거리 140m로 목동구장 2번째 장외홈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6월8일 목동 두산전에서도 다시 한 번 장외홈런을 때렸다. 가장 긴 비거리는 6월10일 목동 삼성전에서 기록한 145m다.
박병호는 유독 올해 비거리가 늘어난 것에 대해 비시즌 기간 근육 운동과 코어 운동의 효과라고 보고있다. 그는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와 장타를 늘리기 위한 부분을 고민하다가 복근 운동 등 근육운동량을 늘렸는데, 배트 스피트나 몸통 회전력이 좋아지면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맞았을 때 타구가 더 많이 날라가는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오른손을 놓고 타격하는 효과를 보고 있단다. 박병호는 “한손을 놓고 치는 비율이 많아졌는데, 이 경우 힘이 끝까지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끝없는 노력과 자기계발 앞에 목동 홈런왕이라는 논란은 극복되는 중이다.
↑ 박병호의 스윙은 시원스럽다. 그의 방망이에서 그려지는 포물선은 벌써 29번째 나왔다. 박병호는 3년 연속 30홈런에 단 하나의 홈런을 남기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 홈런보다 중요한 건 ‘초심’
역설적으로 박병호가 강조하는 건 홈런이 아니라 초심이다. 과거 2군 시절 눈물 젖은 빵을 먹었던 기억을 잊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박병호는 홈경기 때는 다른 동료보다 2시간 정도 빨리 구장에 나와 웨이트트레이닝 등 경기 준비에 들어간다. 그는 “(일찍 나오는 게)마음이 편하다”며 “미리 나와 경기에 대한 생각도 하고 준비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타격 컨디션이 떨어지면 야구장에 나오는 시간은 더 빨라진다.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다.
2년 연속 홈런왕에 올 시즌도 유력한 홈런왕 후보지만 박병호는 항상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초심을 지키지 위한 박병호만의 노력이다. 그는 “스스로 홈런왕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 무너지게 된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미리 차단을 한다”고 설명했다.
시즌 초 외국인 타자에게 배울 점이 있으면 많이 배우겠다는 다짐도 지키고 있다. 박병호는 “SK의 루크 스캇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많은 홈런을 때린 타자 아니냐. 그 선수를 봤을 때는 자기 스트라이크존만 치려는 참을성 분명 가지고 있다”며 “롯데의 히메네스는 큰 덩치에 굉장히 유연하면서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두산 칸투는 몸쪽 공이 왔을 때 팔을 안 피면서 홈런을 만들어내는데 탐 날 정도다.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늘 겸손한 박병호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기록이 있다. 바로 전경기 4번타자 출장이다. 이미 2012~2013년 전경기를 4번타자로 경기에 나섰던 박병호는 올 시즌도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4번타자로 스타팅라이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병호는 “2년 연속 전경기 4번타자 출전은 내가 최초라고 들었다. 올해도 진행 중인데 크게 이슈되는 기록 아니지만 제 스스로 매일매일 타순이 안바뀌고 전광판에 내 이름 있다는 게 자부심을 가진다”고 밝혔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긴 슬럼프가 없었기
“감독님과 코치님이 많이 믿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믿음이 박병호라는 4번타자가 만들어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항상 감사할 뿐이다.” 박병호의 초심 지키기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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