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신문로) 김원익 기자] 결국 월드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책임을 깊게 통감한다고 했지만 실체는 없었다.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발전하겠다는 것이 대한축구협회가 내세운 논리였다. 그 전에도 그랬고, 또 그 전에도 그랬던 논리다. 철저한 문제의 발견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작업은 기약 없이 차후로 미뤄졌다. 월드컵 무대서 14년 만에 최악의 성적을 낸 홍명보 감독은 내년까지 임기를 보장받게 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1무 2패의 부진한 성적을 거둔 홍 감독은 사퇴의사를 밝혔으나 축구협회의 설득에 감독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책임은 느끼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축구협회의 결정이었다. 사진(서울 신문로)=한희재 기자 |
허 부회장의 발표 이후 취재진의 날선 질문이 쏟아졌다. 가장 민감한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이번 대회 실패에 대한 문제점을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우겠다”며 시간을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기자회견이 진행된 배경은 무엇일까. 허 부회장은 “팬들이나 국민들의 여론과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것에 대해서 협회 차원에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향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있다”고 언급했다.
애초에 성인대표팀이나 프로팀 지도 경력이 없는 홍 감독에게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긴 것이 무리가 아니었냐는 질문이 나왔다. 허 부회장은 “물론 홍 감독이 성인대표팀이나 프로 감독의 경험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감독 역사상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감독은 없었다”면서 “유소년대표팀을 이끌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땄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홍 감독은 비록 월드컵에서 실패를 했지만 져 본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번 대회 실패를 시인하고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서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며 거듭 홍 감독을 두둔했다.
협회 차원에서의 책임 소재 문제도 모호한 말로 비켜갔다. ‘협회에서 홍 감독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인데 협회에서는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꾸 책임론이라는 쪽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누가 책임을 질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부분이 나온 것이 없다”며 “그런 점에서 저도 책임을 통감한다. 어쨌든 단장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실체 없는 문제점 찾기만 되풀이했다.
그간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감독의 잦은 교체와 경질에 대해서는 소모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허 부회장은 “물론 감독이 이끌어가는 것이지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경우 감독이 경질되고, 다시 새로운 감독이 온 다음 문제가 생기면 감독이 경질되는 이런 식으로 한국이 많은 시간을 허비해왔다. 물론 책임질 이들은 책임을 져야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간 줄곧 이어졌던 뿌리깊은 축구협회의 병폐가, 이번에는 홍 감독의 유임을 위한 방패막의 논리가 됐다.
이번대회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간이 짧았다는 말로 비껴갔다. 홍 감독 혼자서 많은 것들을 책임지다 보니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운 점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번 대회를 단장으로 가서 하다보니 상당히 어려운 점들이 많더라. 홍 감독도 준비한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미흡한 점이 많았고 준비 상태도 흡족한 상태는 아니었다. 부족했다. 다른 지원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욱 고민해나가겠다”고 했다.
조광래 전 감독의 경질 당시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수들의 선발에 외압이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이번 대회에는 이런 문제들이 없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허 부회장은 “그때 당시에 어떠한 특수한 상황이 있었는지는 전 집행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당시에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바가 없다. 죄송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다가온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다. 허 부회장은 “급박하게 서두르는 일들이 없도록 하겠다. 4년 후, 당장 앞으로 닥쳐온 아시안컵이나 여자축구대회가 단기적인 문제라고 본다면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월드컵은 장기적인 일에 속한다”라며 “앞으로 면밀하게 살펴보고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장기적으로 보면 유소년 축구의 육성 등의 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부터 살펴보면 학벌축구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효율적으로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허 부회장은 이어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18~22,23세의 가장 중요한 나이의 선수들 중에서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발전할 수 있는 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예를 들면 경기경험이나 기량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 결국 그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대표팀의 주축이 된다”면서 “과거에도 시드니올림픽은 비록 실패를 했지만 해당 대회에서 주축이었던 선수들을 바탕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이들이 이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한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그 나이대의 선수들이 경기에 쉽게 출전하지 못하고, 대학축구 등의 아마추어 레벨에서 출전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프로에 진출하더라도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이 나이대의 선수들이 보다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홍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어떤 책임도지지 않게 됐다. ‘재신임하겠다면 그 어떤 1차적인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취재진이 재차 질문을 하자 허 부회장은 “왜 감독에게 책임을 묻지 않냐고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깊게 공감을 하고 있다. 만약 문제점을 파악해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질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의 발전의 문제다”라며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홍 감독은 이번 실패에 대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반성을 하고 있다. 실패의 원인을 그 누구보다도 깊게 궁구하고, 원인을 점검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실패했다고 물러난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대회 실패를 거울삼아 나아간다면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거듭 홍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허 부회장은 “다시 한 번 축구협회가 홍감독과 함께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이날 기자회견의 말들은 허공에서 흩어지는 먼지처럼 실체가 없었다. 허 부회장의 표현은 모호하기만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어떤 뼈저린 반성과 문제 해결이 있을까. 미래를 부르짖는 축구협회의 논리는 이상하게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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