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너무 황당해 화도 나지 않는다.”
정재근(45) 연세대 감독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황인태(35) 심판이 큰 충격에 빠졌다. 황 심판은 이번 사건의 후유증으로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열린 국제농구대회에서 경기 도중 감독이 심판의 얼굴을 머리로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정재근 감독은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회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종료 2분여를 남기고 판정에 불만을 품고 거칠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정 감독은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심판을 때리려는 자세를 취하며 이성을 잃었다.
↑ 1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KCC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결승전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전 1차연장에서 연세대 정재근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중 머리로 들이 받고 퇴장당하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
더 황당한 것은 정 감독이 불만을 품은 판정은 오심이 아니었다. 심판 판정은 정확했다. 황 심판은 지난 시즌에도 한국농구연맹(KBL) 소속으로 코트에 나섰고, 국제심판자격증을 보유한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국제 심판이다. 남자농구대표팀이 FIBA 규정 자문을 구하기도 했던 심판이다.
정 감독은 이날 경기 이후 공식 기자회견도 거부했고 폭행을 당한 심판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황 심판은 “너무 황당해서 화도 나지 않는다. 사과를 할 것 같으면 그런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어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황 심판은 “처음엔 정재근 감독이 다른 심판하게 거칠게 항의를 하고 있어 흥분을 자제시키려고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내며 코를 머리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황 심판은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골밑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고 신체 접촉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파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마 정 감독이 있는 벤치 쪽에서는 파울로 착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 감독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황 심판은 감독에게 충격적인 폭행을 당했지만, 똑같이 흥분하지 않았다. 황 심판은 “그 순간에는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지만, 명승부로 진행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 심판은 이번 폭행 사건으로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황 심판은 “머리를 받아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농구계 현실이 안타까워 마음이 아프다”며 “정재근 감독의 징계 여부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회의감이 든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KBL 심판들의 고충은 심하다. KBL 심판은 정규직원이 아니기
황 심판은 “오늘은 그냥 집에서 가족과 소주나 한 잔 하고 자야겠다”며 애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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