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애너하임) 김재호 특파원] 엔젤스타디움에서 보기 드문 승부가 펼쳐졌다. 시즌 최장 기록인 16이닝 5시간 14분 경기가 열렸다. 마치 더블헤더를 보는 듯했다.
엔젤스는 1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엔젤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시리즈 첫 번째 경기에서 3-2로 이겼다.
이날 경기는 현지시각으로 오후 7시 8분에 시작, 5시간 14분 동안 연장 16회 승부가 펼쳐졌다. 16회말 2사 1, 2루에서 대타 에프렌 나바로가 결승타를 치지 않았다면 승부는 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 16회 승부 끝에 경기를 마무리한 엔젤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美 애너하임)= 조미예 특파원 |
승부가 길었던 만큼, 내용은 늘어졌다. 9회까지 팽팽한 접전을 벌였던 양 팀 타자들은 힘이 빠진 듯, 연장에서는 무기력한 타격으로 일관했다. 간혹 안타가 나오더라도 후속 타자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
지친 관중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떠났고, 4만 2517명의 관중이 찾았던 엔젤스타디움은 어느새 빈자리가 더 많아졌다. 홈팀 엔젤스는 지루한 승부에 몸이 굳어버린 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7회초가 끝난 뒤 하던 ‘7회 몸풀기(7th inning stretch)’를 14회초 뒤 ‘14회 몸풀기’로 바꿔서 한 번 더 했다.
기자석에 자리한 기자들의 표정도 서서히 변해갔다. 한 기자는 “마치 브리티시오픈을 보는 기분”이라며 지루한 연장 승부에 난색을 보였다. 타구가 힘없이 내야에 뜨거나 땅볼로 굴러갈 때마다 탄식이 터져 나왔다.
투수 운영도 고민이었다. 양 팀 선발인 제레드 위버, 이와쿠마 히사시가 각각 6이닝, 7이닝을 막고 내려갔고 남은 이닝은 고스란히 불펜의 몫이었다. 시애틀은 대니 파쿠아가 2이닝, 톰 윌헬름슨이 4이닝을 막아주면서 불펜 소모를 최소화했다.
↑ 결승타를 때린 에프렌 나바로가 음료수 세례를 받고 있다. 사진(美 애너하임)= 조미예 특파원 |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이긴 팀 진 팀 구분 없이 모두 눈이 충혈 돼 있었다. 그러나 표정은 엇갈렸다. 지난해 오클랜드를 상대로 연장 19회 승부를 벌인 끝에 패한 트라우마가 있던 엔젤스는 그 충격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홀로 16이닝동안 투수들의 공을 받은 최현(행크 콩거)은 “중요한 건 결과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적으로는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밝게 웃었다.
패배한 시애틀은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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