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51) 울산 모비스 감독도 시련의 시절이 있었다. 프로 초창기 신세기 빅스 감독을 맡았던 1999-2000시즌 15승30패로 최하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던 유 감독은 “성적이 꼴찌이기도 했지만 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올 시즌 ‘초보딱지’를 붙이고 있는 이상민(42) 서울 삼성 감독과 이동남(39)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다. 삼성은 5승20패로 최하위에 추락해 있고, KGC는 10승14패로 7위에 머물러 있다. 뭔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던 유 감독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려진다.
↑ 서울 삼성 이상민 감독과 안양 KGC 이동남 감독대행이 벤치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KGC는 지난 8일 창원 LG에 28점차 완패를 당했다. 98점을 헌납하고 무기력하게 졌다. 1패보다 홈에서 선수들의 투지와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 더 심각했다.
이날 경기 종료 직후 이동남 감독대행이 선수들을 소집했다. 야단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올 시즌 처음으로 선수단 전체 단체 회식을 했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술이 약한 선수들도 독을 품고 들이부었다. 전성현은 오바이트만 두 차례 하고 다시 와서 또 마셨다.
이 감독대행은 오전 훈련을 뺐다. 대신 단체로 사우나에서 술독을 풀었다. 전날 회식에서 한국식 술 문화 배려로 제외했던 리온 윌리엄스와 애런 맥기도 사우나에 동참했다. 축 처진 분위기를 위한 이 감독대행이 택한 소통의 리더십이었다. 감독이 아닌 형으로서 선수들과 의기투합했다.
이 감독대행은 “화장실에서 오바이트를 두 번이나 하고 온 전성현에게 ‘그런 독기로 농구를 하라’고 말해줬다.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결과적으로 선수들이 다시 뭉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KGC 양희종과 박찬희도 술자리 이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양희종은 “채찍질을 받을 줄 알았는데 우리 스스로 하게 만들어주셔 감사했다.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며 “찬희도 대표팀 이후 감독, 코치님과 얘기를 많이 못해 사소하게 쌓인 것들이 있었는데 풀 수 있는 자리였다”고 반겼다.
박찬희도 “체력적으로도 빨리 떨어지고 부담도 많이 돼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감독, 코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스러웠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상민 감독도 분위기 전환을 위한 소통의 자리를 만들었다. KGC전을 앞두고 부상에서 복귀한 박재현이 주인공이었다. 이 감독은 선수단 미팅 자리에서 박재현을 세웠다. 이어 “부상으로 빠져있는 동안 밖에서 본 삼성의 농구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삼성 농구를 브리핑 해보라는 의미였다.
이 감독은 “재현이가 속공이 없어졌고 리바운드가 잘 되지 않았다는 등 다양한 문제점일 지적하더라”며 동감했다. 박재현의 한 마디가 때론 감독의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 감독이 원했던 것은
두 감독의 소통 결과는 음주소통의 힘이 더 강했다. 지난 11일 삼성과 KGC는 경기 막판까지 알 수 없는 숨 막히는 접전 끝에 KGC가 양희종의 결정적인 위닝샷 80-78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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