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애리조나) 서민교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메이저리그 투수 류현진(28‧LA 다저스)이 자존심을 구겼다. 이제 빅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동갑내기 ‘절친’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리츠) 때문.
류현진은 오직 강정호를 만나기 위해 그라운드 옆 공터에서 3시간을 잠자코 기다려야만 했다.
17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의 넥센 히어로즈 스프링캠프 현장. 류현진과 강정호가 극적(?)으로 재회했다. 두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만남 뒤에는 애달픈 사연이 있었다.
↑ 애리조나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던 LA 다저스 류현진이 넥센 캠프를 방문해 넥센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피츠버그 강정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
↑ 애리조나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던 LA 다저스 류현진이 넥센 캠프를 방문해 넥센과 함께 훈련하고 있는 피츠버그 강정호와 철망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
강정호는 아직 피츠버그 유니폼을 지급 받지 못해 친정팀 넥센에서 준비한 유니폼을 입고 개인훈련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직은 메이저리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넥센 선수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류현진은 강정호를 만나기 위해 무려 3시간을 손가락만 빨았다. 지루함에 지쳐 카트에 몸을 맡긴 채 오매불망 강정호만 바라봤다. 가끔씩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강정호에게 다가가 “빨리 끝내라”고 핀잔을 줄 뿐이었다.
류현진은 강정호와 선약을 했다. 훈련 뒤 오랜만에 밥 한 끼 먹으면서 회포를 풀 작정이었다. 할 이야기도 많을 터. 사실 급한 쪽은 강정호였다. 이미 메이저리그 두 시즌을 경험한 류현진에게 돈 주고도 못 살 조언을 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정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훈련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다. 류현진이 “벌써부터 무슨 훈련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다그치자, “내가 너랑 같냐”라며 괜히 한 소리만 들었다.
류현진은 기다림 내내 “내가 왜 쟤 때문에 이렇게 기다려야 하느냐”며 혼잣말만 되풀이했다. 구장에 있는 카트를 옮겨 다니며 앉아서 기다리기 일쑤. 때론 염경엽 넥센 감독과 한 마디, 지나가는 넥센 선수들과 한 마디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취재진과 농담 따먹기도 지겨워질 판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정호의 훈련이 끝났다. 이어진 취재진과의 인터뷰. 심술이 난 류현진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정호의 등 뒤로 야구공을 굴려보기도 했다. 빨리 끝내라는 신호. 하지만 강정호는 “오늘 저녁에 밥을 먹기로 했는데 자기가 괜히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다”며 신경도 쓰지 않고 웃어 넘겼다.
류현진과 강정호는 평소에도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다. 주로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한다. 하지만 야구 이야기는 없이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강정호가 슬쩍 조언을 구하려고 한 적은 있다. “그쪽 투수들 공은 ‘칠만 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칠만 하다’고 하더라.” 그게 끝이었다.
이날 강정호는 모든 스케줄을 소화한 뒤에서야 류현진과 밥을 먹으러 넥센 캠프를 떠났다. 류현진은 뒤처질까 슬리퍼를 끌며 터벅터벅 강정호의 뒤를 얼른 쫓았다. 과연 이날 저녁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또 야구 대화는 배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편 둘은 2015시즌 역사적인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첫 대결은 8월8일부터 PNC 파크에서 열리는 3연전, 두 번째 대결은 9월19일부터 다저스타디움에서 갖는 3연전이 예정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류현진이 선발투수로 나서고 강정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성사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말 대신 몸으로 야구 대화를 나눠야 하는 날이다.
↑ 강정호에게 "빨리 훈련 끝내고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고 있는 류현진. 사진(미국 애리조나)=옥영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