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순위와 승패를 겨루는 엘리트 스포츠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여러 가지 룰과 규칙을 만들어낸다. 보는 재미를 위해서, 경기 진행의 편의성을 위해서, 더 많은 지역에의 보급을 위해서 이런 저런 규칙과 룰이 탄생하고 또 고쳐진다.
그 많은 ‘게임의 법칙’ 중에서 오로지 순수하게 선수들만을 위한 룰 중의 하나가 반도핑이다.
반도핑이 약물과 싸우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은 모두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선수들의 체격조건, 퍼포먼스에 인공적인 자극이나 강화를 주어 경기력을 상승시키는 약물과 싸우는 이유는 진실한 선수들의 최선의 노력을 공정한 경쟁으로 지켜주기 위함이고, 선수들의 건강에 실제적 혹은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는 약물과 싸우는 이유는 경쟁 그 이후까지 선수들의 건강과 행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 누가 ‘국보’ 수영스타를 지켜내지 못했을까. 박태환이 테스토스테론 주사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도핑 위반 사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들은 ‘치료 목적의 투약’과 ‘잘 몰랐다’는 호소다.
이 두 가지 해명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반도핑을 한 순간에 선수들에 대한 가혹한 규제, 혹은 부담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은 일반인들도 ‘약’의 두 얼굴을 잘 알고 있다. ‘약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 ‘피부과 약은 독하다’ ‘감기약은 취한다’ 등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약이 몸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조심스레 가려 써야 한다는 인식을 나눈다.
아픈 선수, 다친 선수 모두 적절한 치료와 의술을 누릴 권리가 있다. 반도핑의 의무가 있는 이들에겐 치료목적사용면책(TUE)의 권리도 있다. 명확한 목적과 적량 투약의 원칙만 지켜진다면 치료 목적의 투약은 TUE 안에서 보호받는다.
사전 신고를 놓친 케이스 중에서도 순수한 목적과 선의의 실수가 충분히 소명된다면 징계를 상당히 경감받곤 한다. 실제 스포츠계에서 팬들을 실망시킨 도핑 스캔들 가운데 너무 억울한 사례가 지나치게 과한 형벌로 이어진 케이스는 많지 않다.
‘감기약 잘못 먹어도 도핑이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훈련하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에게 약에 대한 조심은 의무이자 일상이다. 하물며 일반인들도 조심하는 게 약이다. 신체의 능력이 누구보다 소중한 선수들이 약물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일은 소홀할 수 없는 과제다.
우리 선수들에게 반도핑이 두려운 규제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서슬퍼런 반도핑의 감시는 혹독하고 치열한 스포츠 경쟁 속에서 누군가의 지나친 욕심, 무자비한 채근, 무성의한 취급으로부터 선수들을 지켜줄 울타리다.
한국 수영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 박태환(26)에게 검출된 금지 약물이 테스토스테론인 것은 충격이자 슬픔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스테로이드 계열 남성 호르몬의 일종이다. 근육, 뼈 등의 발달에 관여하기 때문에 벌크업이 유리한 종목의 선수들이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성분으로 스포츠계에서는 오용의 역사가 꽤 길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금지약물중의 하나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테스토스테론의 대체제로 개발된 약물이다. 근력과 근육량을 늘리려는 목적이 같다.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앞서 제정했던 반도핑규약의 첫 금지약물리스트부터 최상위 위험도로 포함됐던 테스토스테론은 목적과 남용의 부작용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넘치는 자격의 금지약물이다.
테스토스테론을 모르고 ‘국보’ 수영선수의 몸관리에 나섰다는 의사가 있고, 성분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오늘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도핑은 바로 그들을, 그들의 공정한 경쟁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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