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대호 기자] 우크라이나 유명 축구전문가가 한국인이라는 주장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전 우크라이나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 세르히 코노발로프(43)다. 한국과는 1996~1998년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서 ‘코놀’이라는 등록명으로 52경기 14골 3도움을 기록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K리그에서는 공격수였는데 1997시즌에는 26경기 12골 1도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해당 시즌 61번의 슛으로 12골을 넣어 득점성공률 19.7%라는 인상적인 결정력을 선보였다.
최근 우크라이나 러시아어 인터넷 이용자를 중심으로 코노발로프가 우크라이나/한국 복수국적자라는 주장이 불거졌다. 위키백과 러시아어판에서 국적 표기가 우크라이나 단독에서 우크라이나/한국으로 수정되기도 했다.
↑ 코노발로프가 세바스토폴 감독 대행 시절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사진=세바스토폴 공식 홈페이지 |
그럼에도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질문은 계속됐다. “우크라이나프로축구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소속이었던 1993년 한국 클럽의 초청으로 방문하여 평가전 2경기를 치른 바 있다”고 첫 인연을 설명한 코노발로프는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축구계는 한국을 잘 알았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구소련이 금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서울올림픽 금메달 감독인 아나톨리 비쇼베츠(69·러시아)가 있었다. 비쇼베츠를 통하여 제안을 받았다. 직후에는 거절했으나 나중에 승낙했다”고 말했다.
비쇼베츠는 한국에서 1994년 국가대표팀 기술고문을 시작으로 A팀 감독(1994~1995년) 및 올림픽대표팀 감독(1995~1996년)을 역임했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1승 1무 1패 득실차 0이라는 괜찮은 성적에도 다득점으로 밀려 조 3위에 그치면서 준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당시 한국은 2골, 2위 가나는 4골이었다.
한국 복수국적자라는 오해까지 받아 곤욕을 치렀음에도 한국에 대한 호감을 밝히기도 했다. “처음에는 ‘축구선수’로 입국했으나 한국을 하나씩 알게 되자 좋아하게 됐다. 물론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이라고 말을 꺼낸 코노발로프는 “한국인은 매우 감성적이고 타인을 세심하게 챙겨준다. 그리고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나는 이게 마음에 들었다”면서 “축구도 비슷하다. 당시 한국축구는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영국축구와 닮았다. 전투적이고 긴 패스가 잦으며 기능훈련의 질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였기 때문에 경기력도 좋았고 덕분에 디나모 키예프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코노발로프는 드니프로에서 리그에서만 4년 동안 리그에서만 29골을 넣는 활약으로 우크라이나 최고 명문 디나모 키예프로 이적하여 1995~1996년 뛰었다. 포항 퇴단 후에도 디나모 키예프와 1998~2000·2001~2002년 다시 인연을 맺었다.
K리그뿐 아니라 코노발로프는 2004년 중국 1부리그의 칭다오 중넝에서도 뛴 바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스타들이 줄줄이 중국프로축구로 향하고 있다. 리그 수준도 향상되는 것 같다’는 질문을 받자 “중국에서는 유능한 한국 선수를 계속 원한다”면서 “한국인뿐 아니라 K리그를 경험한 외국인과 지도자도 영입 대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코노발로프는 1993~2003년 우크라이나대표로 A매치 22경기 3골을 기록했다. 1996 유럽축구연맹선수권대회(유로 96) 예선 득점자이기도 하다. 구소련 해체 전에는 1991 국제축구연맹(UEFA) U-20 월
지도자로는 2011~2013년 FC 세바스토폴 코치를 거쳐 2013~2014년 감독 대행을 역임했다. FC 세바스토폴은 2014년 크림 위기를 통하여 연고지 세바스토폴이 우크라이나 2대 특별시 중 하나에서 러시아 3대 연방시의 하나로 강제 변경되자 우크라이나 1부리그에서 2014-15 러시아 3부리그로 소속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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