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10년전쯤 어느 날, 꿈속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문득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도 야구리그가 있다던데... 언젠가 거기서도 야구해 볼 수 있을까.’
얼추 보름 뒤 그는 거짓말 처럼 유럽행 비행기를 탄다.
어디서 왔는지, 다시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머무는지, 또 어디를 스쳐 가는지, 지난 25년 동안 떠도는 바람처럼 야구를 해온 투수 최향남(44)이 이번엔 오스트리아로 간다.
↑ “야구를 했던 날들은 다 좋은 기억이 된다”는 투수 최향남이 이번 시즌은 오스트리아 프로팀에서 뛰게 됐다. 사진=MK스포츠 DB |
오스트리아 베이스볼리그(ABL)에 소속된 세미프로팀 다이빙덕스가 그의 새 둥지다.
롯데에서 통역 생활을 했던 하승준씨가 지난해말 총괄 코치로 부임한 팀. 이용훈 롯데 드림팀 코치를 통해 하승준씨를 소개받은 최향남은 별 고민 없이 “가겠다”고 나섰다. 유럽은 여행으로도 가본적이 없는 낯선 곳이다. 한국 야구선수들에게는 쉽사리 갈 일이 없는 대륙이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데 망설일 게 뭐 있어요.”
고양 원더스가 지난해 11월 해체되면서 그의 앞길도 막막했다. KBO의 몇몇 구단에서 기회를 알아보려 했지만, 워낙 고양에서 던진 기록이 없어 어필이 힘들었다. 그러나 최향남은 체력에 자신이 있는 한, 계속 야구를 하고 싶은 투수다. 던질 마운드가 있다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적응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야구를 하러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적응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도미니카, 일본, 대만, 어디서도 뛸 수 있던 비결은 그렇게 단순했다.
“어디서도 재미있게 잘 보냈다고 말을 하게 되는 게 항상 야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사실 도미니카에선 먹은 게 잘못 돼 구급차를 타본 적도 있고... 떠올려보면 이래저래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지만, 지나고 나면 다 야구를 했던 좋은 기억이 돼있습니다.”
그래서 믿는다. 유럽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동안 다녔던 곳은 야구를 적어도 한국만큼, 혹은 한국보다 훨씬 많이 하는 나라들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야구의 ‘불모지’다. 게다가 ABL의 경기 수는 팀당 한시즌 20경기 남짓이다.
“템포가 많이 달라지겠죠.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야구가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세상 사람들이 가서 살고 싶어 하는 나라들 중 하나라는데..”
예전에는 그의 ‘방랑야구’를 만류하고 걱정하던 가족들도 지금은 어떤 결정을 들어도 묵묵히 수용해준다. ‘어디로 간다, 언제 온다’ 꼬박꼬박 말해줘야 할 의무감이 느껴지는 지인들도 거의 없다. 그렇게 최향남의 삶은 이미 깃털처럼 가벼워져있다.
이번에도 조용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일단 건너가서 ‘잘 던진다’는 깜짝 소식을 한국에 전하려고 했는데, 입단 소식은 역시 출국 전에 알려졌다.
지금 최향남은 제주도에서 바닷가를 달리며 몸을 만들고 있다. ‘뒤태를 되찾았다’며 겨울 훈련의 성과를 자신한다.
이번에 같이 입단하는 황건주(전 고양원더스 투수)와 함께 지난해말부터 산에 들어가서 계곡훈련을 했고, 올해초에는 LG 때의 팀동료 김혁섭 감독이 이끄는 문경 글로벌선진고 야구팀의 진주 전훈장에서 고등학교 선수들과 운동을 하기도 했다. 십대 선수들 속에서도 처지지 않고 달렸다.
훈련은 여전히 지독하게 했다. 아직도 그런 훈련을 버틸 체력이 되느냐고 물었다. “훈련은 체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열정으로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체가 다시 튼실해져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가서 바로 운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야죠.”
↑ 최향남이 입단하는 다이빙덕스는 오스트리아의 야구리그인 ABL에 속한 6개팀 중 하나다. 20대 중초반의 유럽 야구 선수들이 주축인데,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선수명단에는 46세의 외야수가 한명 있어 놀랍게도 최향남이 최고령은 아니다. |
“그때는 팀이 원하고 감독님이 원하는, 프로야구가 원하는 그런 야구와 성적이 목표였겠죠. 지금은 내가 원하는 야구가 목표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내가 글러브를 놓을 순간을 가르쳐줄 마운드에 설 때 까지’ 그는 계속 꿈을 꾸려한다.
길을 떠나야 새 길을 만난다. 최향남에게 끊임없이 새 길이
오는 24일 유럽행 비행기를 탄다. 일단 1년을 벼르고 가지만 트렁크는 하나다.
“맨 처음 한국 떠날 땐 이고 질 짐이 참 많았습니다. 이제 가방 하나면 충분합니다.”
가슴에 열정 하나만 가득하게 담고 그는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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