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힘겨루기는 본능이다.
어렸을 때 팔씨름 왕좌에 몰두했던 것처럼, 골프장의 남자들은 딱히 스코어와 상관도 없는 드라이브 비거리에 자존심을 걸곤 한다.
처음 투수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 참 세게 던지려고 했다. 옆 친구보다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려고 악을 썼던 것 같다.
시속 140km가 되지 못하는 속구를 가지고 프로에서 살아남아 2년 연속 10승을 따내고 있는 유희관(29·두산)은 분명히 비범한 투수다. 학창 시절에도 그는 또래 투수들 보다 공이 빠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공이 최고’라는 자신감은 그만한 투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희관의 최고 경쟁력은 당당한 배짱으로 무장한 멘탈일까.
아니, 사실 유희관은 훨씬 더 실체적인 테크닉과 강점을 갖고 있는 훌륭한 투수다.
↑ 유희관은 상체의 흔들림이 극소화된 안정된 투구 폼으로 뛰어난 제구력을 보여주고 있다. 동작의 안정성은 기본적인 파워와 함께 좋은 투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진=MK스포츠 DB |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좌우 혹은 상하로 얼마나 몸통이 흔들리는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꼽의 위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다. 세트포지션에서의 배꼽 위치와 홈플레이트 사이에 가상의 직선을 기준선으로 설정한 다음, 투구 후 변화된 배꼽의 위치가 기준선에서 위아래로 얼마나 움직였는지, 1,3루간에서 얼마나 이동했는지 체크하면 된다.
유희관은 한차례 주저앉은 중심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끌고 나오는 단단하고 정적인 투구 폼을 갖고 있다. 거의 몰리는 공을 구경하기 힘든 컴퓨터 같은 제구력은 컴퓨터 같은 투구 폼에서 나온다.
이러한 동작의 안정성은 강인한 하지 근력을 필요로 한다. 유희관이 누구보다 많이 노력하는 투수임은 흔들림 없이 일정한 투구 동작을 유지하는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구속은 느려도 강력한 투수로서 한껏 위상을 높인 것 같지만, 여전히 유희관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상대 타자들로부터다.
흔히 유희관과 맞서는 타자들은 변화구를 노리는 타격을 많이 보인다. 단언컨대 그의 변화구는 치기 힘들다. 그래서 변화구는 못치고 속구에는 타이밍이 맞지 않는 낭패를 보는 것이다.
이는 속된 말로 ‘만만한’ 구속의 패스트볼을 가진 투수와 맞설 때, 타자들이 조금 욕심을 내는 경우다. 변화구를 노리면서 배트가 나가도 그 정도 구속의 속구쯤이야 맞힐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일단 변화구를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간다.
어쩐지 정답이 아닐 듯하다. 웬만하면 열과 성을 다해 유희관의 속구를 노려 칠 것을 권하고 싶다.
시속 137km는 만만한 구속일 수 있다. 그러나 영리하게 계산되고 완벽하게 제구된 유희관의 속구는 변화구를 치려다가 얻어 걸릴 만큼 만만하지 않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