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볼넷은 미움을 부른다.
위기에 처해 구원 투수를 올렸을 때, 벤치가 가장 싫어하는 결과는 볼넷이다. 진정시켜야 할 상황을 악화시키고, 뺄셈을 덧셈으로 만들며 계산을 일그러뜨린다.
볼넷은 재앙을 부른다.
누상에 주자를 보태면서 대량 실점의 계기를 만든다. 소위 ‘빅이닝’은 연타에 볼넷과 실책이 섞이면서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요즘 야구’에서 특히 괴로운 단점. 볼넷은 짜증을 부른다.
볼넷이 쏟아지면 더 많은 투수가 동원되고, 더 오랜 경기시간이 걸린다. 4사구는 안타나 득점보다 더 밀접한 엿가락 경기시간과의 관련성을 보인다.
↑ 16일 잠실경기는 양팀이 20개의 4사구를 주고받으며 올시즌 정규이닝 최장인 4시간21분의 지구전 끝에 LG가 10-5로 KIA를 이겼다. 사진(잠실)=곽혜미 기자 |
경기 종반까지 양 팀이 힘겹게 5점씩을 냈던 이 경기는 다득점 난타전은 아니었다. 7회 LG가 홈런 두 방으로 5점을 보태며 만든 15점은 다득점 순으로 공동 13위권 경기. 안타 수(20개)는 25위권에 불과한 경기였다. 그러나 최장시간 경기 톱랭커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시간도둑’ 4사구의 탓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6일까지의 72경기 중 최다 4사구 12경기(14개 이상)의 평균 경기시간은 4시간에 3분이 모자라는 3시간57분이었다. 이는 다득점 12경기(16득점 이상)의 평균 경기시간인 3시간31분, 최다안타 13경기(23개 이상)의 평균 경기시간인 3시간40분을 훌쩍 웃돈다. 4사구 개수가 득점이나 안타수 보다 더 지독한 경기시간 지연의 주범임을 의심하게 한다.
올시즌 정규이닝 최다득점 경기(21득점) 타이를 기록 중인 두 경기를 비교해보면 4사구의 ‘위력’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지난 7일 잠실 두산-넥센전은 양팀이 37안타 21득점을 쓸어 담으며 안타수와 스코어에서 모두 1위에 오른 경기다. 봇물 터졌던 ‘물량전’이었지만, 경기 시간은 시즌 평균인 3시간17분. 4사구가 3개에 불과했던 덕분이다.
반면 지난달 28일 부산 롯데-KT전은 21점을 주고받기 위해 13개의 4사구가 필요했고, 잠실경기 보다 훨씬 적은 28안타를 치면서도 경기시간은 4시간1분이 걸렸다.
이러한 4사구의 경기지연 효과 때문에 “스트라이크존 확대만 철저하게 추진해도 타자의 타석 이탈이나 공수교대 시간 단축 보다 더 근본적인 ‘스피드업’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현장의 의견도 많다. 스트라이크존이 커지면 4사구 감소의 직접적인 결과 이외에도 타자들의 적극성이 높아지면서 ‘속전속결’ 승부의 기대 확률이 커진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를 최고의 ‘스피드업’ 대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흔히 예로 꼽는 것은 퓨처스리그다. 스트라이크존이 1군에 비해 덜
개막 첫 달, 아직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한 투수들이 잦은 4사구로 각팀 벤치의 속을 끓이고 있는 가운데 16일 현재 경기당 4사구는 9.8개로 지난 시즌의 8.8개를 꽤 웃돌고 있다.
[chicleo@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