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해서 제구력을 잡으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하던 코치가 문득 어떤 투수들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한다. “쟤는 원래 컨트롤이 좋다”고.
빠른 공을 가지고도 컨트롤이 부족해서 몇 년 째 ‘유망주’ 딱지를 떼어내지 못한 투수들은 하늘에 항의라도 하고 싶을 것 같다. 원래 컨트롤이 좋은 투수는 반칙이라고.
진짜 ‘원래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현장의 코치들이 느끼는 체감 상으로는 분명히 감각이 뛰어난 투수들이 있다. 속칭 ‘공을 잘 만지는’, 손가락 감각이 섬세하면서 균형감이 뛰어난 투수들은 변화구도 빨리 배우고 남들과 비슷한 노력으로 곧잘 더 나은 제구력을 갖는다.
↑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의 공통점은 최적화된 감각기능과 일정한 투구동작,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다. ‘불혹의 투수’ NC 손민한은 이를 두루 갖춘 최고의 컨트롤 투수다. 사진=MK스포츠 DB |
‘원래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이중 60%를 남들보다 더 갖고 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감각적인 투수들이 요즘 젊은 투수들 가운데는 “예전보다 훨씬 드물다”는 게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이다.
여기서 ‘예전 투수들’과 ‘요즘 투수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본다. 소질을 형성하는 데는 유전적 요인에 더해 무한한 감각 계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유아기부터 소년기까지의 발달 과정이 중요한데, 이 시기에 몸의 ‘감각’을 기르는 기회가 옛날 어린이들에게 오히려 더 유리했다는 느낌이 있다.
예전의 어린이들은 밖에서 많이 뛰어 놀았다.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나 교구가 없이 간단한 물건으로 몸을 많이 쓰는 놀이를 했다. 이 중에는 상당히 좋은 오감 발달 놀이가 많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같은 놀이는 표적을 조준하는 감각을 발달시키는 데 더없이 좋다. 공깃돌 놀이는 손의 소근육을 섬세하게 다듬어주고, 한발 뛰기와 땅따먹기는 균형감각을 예민하게 단련시켰을 것이다. 이에 비해 요즘 어린이들의 놀이는 지능 계발 훈련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직접적인 원인일 수는 없지만, 체격조건이나 파워가 좋은 투수들은 훨씬 늘어났는데도 유독 제구력이 뛰어난 ‘감각적인 투수’들만 줄어든 현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감각은 상당히 섬세하고 몸 전체에서 유기적이며 밸런스가 중요하다. 사용하는 쪽의 감각을 예민하게 끌어올리기 위해 반대쪽의 감각 훈련이 효과적이라는 임상이 있는데, 이를 듣고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반대운동’을 시키곤 했다. 사용하는 손의 반대 쪽 손으로 캐치볼 훈련을 하게 했더니 균형감각이 좋아지고 제구력 향상에 효과를 보는 사례를 관찰했었다.
투수들에게 제구력은 영원한 숙제이고 영원한 기본이다. 제구력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스트라이크도 잘 못 던지는 투수가 볼을 잘 던질 수 없다. 속구를 제대로 넣지 못하는 투수가 변화구 컨트롤을 훈련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구력 훈련은 스트라이크를 먼저 잡고, 그 다음에 코너워크, 그 이후에나 볼을 연습해야 한다. 속구의 컨트롤을 우선적으로 체득한 뒤에 변화구를 훈련해야 한다.
볼의 스피드를 늘리기 위한 시도나 새 변화구 개발은 일단 자기 공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게 된 후에나 넘어갈 단계라고 생각되는데, 전훈캠프의 단골 레퍼토리로 지나치게 많이 듣는 느낌이 있다.
투수들이 얻어맞았을 때, 십중팔구는 잘못 던졌을 때다. 던져야 할 곳에 넣지 못한 공이다. 흔히 실투라고 한다. 노리던 곳에 정확하게 들어갔는데도 맞았다면? 먼저 생각해야 할 원인은 볼 배합이다. 구속이나 구질 탓은 가장 나중에 해야 한다. 그만큼 ‘원하는 곳에 제대로 넣은 공’은 문제가 없는 공이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