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퀵후크’라는 말이 없었다.
선발 투수가 빨리 내려가면 ‘조기 강판’이라고만 했는데, 조기강판은 투수가 못 던져서 마운드를 내려온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 ‘퀵후크’는 빨리 끌어내린다는 뜻이니 주어인 벤치의 빠른 선택에 중점을 둔 표현이 된다.
어떤 경기 상황, 혹은 어떤 팀내 사정이 있어 퀄리티스타트 요건을 채우는 도중의 선발을 끌어내리는지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경기의 승패만을 두고 ‘퀵후크’를 따져 묻는다면, 감독들은 “결과론으로 비판하지 말라”고 응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퀵후크’를 쓰는 벤치에게 우리가 물어야하는 것은 한 경기의 결과가 아니라, 144경기를 치러야할 한 시즌의 비전을 갖고 있는가다.
↑ ‘퀵후크’ 1위인 김성근 감독(오른쪽)의 한화는 10일 경기까지 불펜(150⅓이닝)이 선발(145⅓이닝)보다 많은 이닝을 던진 유일한 팀이다. 개막 한달 내내 팀의 연패와 선발진의 난조가 겹쳐 교체 타이밍이 빠른 편이었던 조범현 감독의 kt는 선발이 153⅓이닝, 불펜이 148⅓이닝을 소화해 한화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불펜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MK |
‘퀵후크’가 발동하는 경기는 주로 감독이 승부수를 던지는 경기다. 잡고 싶은 경기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때 당겨 나오는 투수들은 대체로 소수의 필승조가 된다. 잦은 ‘퀵후크’ 케이스를 쌓아가는 팀들을 보며 ‘불펜의 과부하’, 특히 ‘필승조의 과부하’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체계적인 웜업으로 관리되는 선발 투수들과 달리 셋업맨들의 몸풀기는 워낙 돌발적이고 불규칙하다. 때론 과하고 때론 불충분하다. 여기에 ‘퀵후크’의 경우라면 예상보다 빨리 콜을 받는, 허겁지겁 출격이 되는 경우도 많을 수 있다. 또 등판 상황은 부담스러운 승부처일 가능성이 높다. 피칭의 피로도 역시 선발 투수처럼 관리하기 힘들다. 이래저래 열악한 환경인 셋업맨들이 남은 시즌에 대한 긴 고려 없이 소모되기 쉽다는 점에서 ‘퀵후크’를 비판하게 된다.
그렇다면 3점 이상 무너지지도 않은 선발 투수를 왜 빨리 내렸는가. 두 가지 정도로 ‘퀵후크’의 배경을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안타를 많이 맞고 구위가 불안할 때, 둘째는 제구가 안돼서 자꾸 볼넷을 줄 때다. 두 경우 모두 벤치의 책임인 이유는 전자는 벤치의 과욕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벤치의 실책이기 때문이다. 공을 제대로 넣지도 못해 이닝을 충분히 봐주지도 못하고 내릴 정도의 투수라면 선발 선택이 잘못된 것이니까.
‘퀵후크’는 본질적으로 승리의 유혹이다. 사실 우리 프로야구 감독들이 처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가시권에 들어온 한경기의 승부를 확 잡아채야 한다는 조바심이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이 한경기의 승패가 나중에 포스트시즌 여부를 가리는 한경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한 생각을 하는 감독들은 장기적인 걱정, 개별 선수에 대한 고려보다는 당장의 확률, 한경기의 승률에 배팅하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조바심을 볼 때마다 강력하고 건설적인 프론트야구로 리그가 발전하기를 희망하게 된다. 팀의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주체는 현장이 아니라 프론트다. 강력한 프론트가 장기적인 야구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멀게 보는 목표를 설정한다면, 현장 야구가 쫓기지 않고 단기적인 배팅, 급급한 결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전 삼성·LG 투수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