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승민 기자] 여드름이 고민이었던 스물 한 살의 이승엽(39·삼성)이 홈런 타점 최다안타의 타이틀을 휩쓴 뒤, ‘야구천재’ 이종범(MBC스포츠 해설위원)을 제치고 역대 최연소(당시) 정규시즌 MVP에 올랐던 해는 1997년이다. 출범 열다섯 돌이었던 당시의 KBO는 ‘라이언킹’의 탄생이 그 후의 열다섯 해 동안 리그를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예감했을까.
↑ 삼성 이승엽이 KBO 통산 400호 홈런을 때려낸 3일 포항 롯데전 직후, 금박 프린트가 빛나는 기념 유니폼을 입고 대기록을 자축했다. 사진(포항)=김영구 기자 |
21세기가 되기 이전에 KBO도 50홈런 타자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승엽이 타격 5관왕의 ‘지존’에 올랐던 1999시즌(54홈런) 덕분이었다. 우리의 홈런타자가 ‘월드레코드’를 세웠다고 뽐낼 수 있었던 것도 이승엽으로부터. 그는 빅리그, 일본프로야구의 역대 어느 타자보다 어린 나이였던 만 스물여섯에 통산 300홈런(2003년 6월22일)을 돌파했다.
아시아의 파워히터들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었던 숫자 ‘55’, 1964년 오사다하루(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선 것도 2003년이었다. 무려 39시즌 동안 담장 밖에 머물던 숫자 ‘56’을 그라운드에 펼쳐 보인 최초의 아시아 타자인 이승엽은 KBO의 ‘성인식’이었던 그 해를 뿌듯하게 살찌웠다.
그의 홈런은 기록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많은 순간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6차전, 9회말의 동점 스리런 홈런은 당시 ‘무관의 명가’였던 삼성에게 창단 20년만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던 가장 극적인 한방이었다.
KBO 흥행의 ‘10년 암흑기’를 반전시킨 계기가 되어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레이스에서도 이승엽의 홈런포는 마지막 두 경기의 결승타를 책임졌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선 8회 역전 투런, 쿠바와의 결승에선 1회 선제 투런을 날렸다.
3일 포항 롯데전에서 KBO 통산 400홈런을 돌파하면서 이승엽은 KBO와 NPB(일본프로야구)에서 뛴 프로 21시즌 만에 통산 559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0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51명, NPB는 18명이다. 그러나 이승엽의 한일 프로 통산 559홈런은 110년 역사의 ‘빅리그’ 순위표에서는 역대 14위, NPB의 순위표에서는 역대 4위에 오를 수 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순둥이’ 미소를 가진 스타지만, 이승엽은 열아홉 데뷔 시절부터 ‘독종’이란 소리를 들었던 승부욕 강한 선수다. 지기 싫어하고 언제나 악착같이 노력했다.
1998년 다섯달 동안 ‘홈런킹’을 호령하고도 마지막 한달의 홈런왕 타이론 우즈(당시 두산)에게 홈런 타점 MVP를 줄줄이 빼앗겼던 이승엽은 그 패배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벼르더니 이듬해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출루율의 5개 타이틀과 MVP를 모조리 거머쥐었다.
당시 이승엽은 “서른다섯 살까지 부상 없이 뛰면 KBO의 통산 홈런 타점 최다안타 기록을 모두 세울 수 있다”며 자신감과 의욕을 보였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 통산 300홈런을 때려낸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돌아온 이승엽은 이제 KBO의 개인 통산 홈런기록을 400까지 늘려놓았고, 통산 타점은 양준혁(1389개)의 기록이 가시권이다.(1240개)
근 20년 동안 그는 늘 특별해야 하는 ‘국민타자’의 무게를 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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