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야구중계 방송이나 기사를 보면 생소한 미국 야구용어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1970~1980년대 야구를 즐겼던 중장년층 팬들은 이질감에 머쓱해진다.
‘스윕’, ‘퀵후크’, ‘백투백홈런’, ‘빅이닝’, ’이닝 이터’ 등등.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은 미국 원어가 아나운서의 입과 활자를 통해서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야구를 좀 안다는 젊은 팬들은 이런 용어를 야구식견의 척도인양 자랑삼아 늘어놓는다.
↑ 미국 야구용어가 범람하면서 제대로된 사용과 한국적 표현을 찾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하지만 단어 자체보다 그 용도가 잘못 쓰일 땐 문제가 심각해진다. ‘퀄리티스타트’는 워싱턴포스트와 LA타임스 등에서 활동한 리차드 저스티스 기자가 1986년 처음 만들어 사용한 단어다. 당시 메이저리그는 투수 분업화 개념이 도입되면서 마무리 투수가 본격 등장한 시기였다. 저스티스 기자는 선발투수로서 6이닝 3실점 이하면 ‘최소한의 책임’은 다했다는 의미로 이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6이닝 3실점이면 평균자책점이 4.50이다. 결코 A급 투수가 될 수 없는 요건이다. 그런데 이 용어가 한국에 넘어와선 선발투수의 최고 가치처럼 변질되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스몰볼’이 야구계를 강타했다. 미국 쿠바를 연파하고 우승한 일본의 세밀한 작전야구를 일컫는 어휘였다. 이후 한국야구에도 ‘스몰볼’ 바람이 불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스몰볼’의 반대 개념으로 아무 생각 없이 ‘빅볼’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스몰볼’의 반대 개념, 다시 말해 작전을 구사하지 않고 타자들의 장타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빅볼’이 아니고 ‘롱볼’이다. ‘빅볼’은 타자들이 ‘홈런치기 좋은 볼’이란 뜻이다. 지금도 ‘빅볼’이란 단어를 전혀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퀄리티스타트’나 ‘스몰볼’ 등은 일목요연한 우리말로 옮기기 쉽지 않다. 한때 ‘퀄리티스타트’를 ‘선발쾌투’로 대체사용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의미가 다르다. 또 ‘스몰볼’을 그저 ‘작전야구’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식 좋은 표현을 버리고 원어만을 좇아 맹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언제부터인가 3연전을 모두 이기면 너나없이 ‘스윕’이라는 표현을 쓴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싹쓸이’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는데 말이다. ‘스윕승’, ‘스윕패’는 실소를 자아낸다.
‘연속타자홈런’이라는 쉽고 편한 용어가 있는데도 굳이 ‘백투백홈런’이라고 쓰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퀵후크’라는 낯설고 어려운 표현 대신 ‘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하고 센서티브한…’ 이런 보그체가 한국 프로야구도 물들이는 건 아닌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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