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원익 기자] 사실 딜레마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 최고 좌완이라는 명예를 어깨에 짊어지고, 곧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는 김광현(27, SK)이다. 과연 그 선택은 최선이었을까.
김광현은 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정규시즌 경기에 선발 등판해 7⅔이닝 10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1-1인 8회 2사부터 교체돼 승패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평균자책점을 3.47까지 떨어뜨린 호투. 이날 선발 맞대결을 한 피가로와 함께 모처럼 시원한 투수전을 선보였다.
그런데 경기 종료 후 김광현은 전혀 다른 이유로 세인들의 온갖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빈 글러브’로 태그를 해 주자를 아웃시켰다는 이유에서다. 김광현 정도 되는 선수이기에 더욱 아쉬운 논란. 한국 야구는 이제 과거의 구태의 야구를 넘어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하는 시기에 있다. 빛나는 호투로 쾌승을 거둬야 할 마운드, ‘김광현 VS 피가로’라는 최고의 재료가 오로지 논란으로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 그게 최선이었을까. 사진=MK스포츠 DB |
이때 최형우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SK 수비의 본헤드 플레이이자 삼성의 무리한 베이스 러닝이었다. 그런데 이후 기묘하고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근처로 일제히 모인 3명 중 김광현과 브라운이 동시에 글러브를 내밀었다. 타구가 빨려 들어간 곳은 브라운의 글러브. 함께 손을 뻗었지만 공을 잡지 못했던 김광현은 달려 가던 관성 그대로 빈 글러브를 뻗어 최형우를 태그했고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곧바로 공수교대가 되면서 김광현은 벤치로 들어갔다.
삼성 더그아웃에서도 누구도 항의 하지 않았을 정도로 깜쪽같은 장면이었다. 태그 자체는 무리가 없는 장면일 수 있다. 하지만 더욱 논란을 키운 것은 해당 장면 이후 김광현이 함께 사건을 경험한 브라운의 어깨동무를 하고는 멋쩍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모습이었다. 분명히 뒤늦게라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해당 순간을 멋쩍게,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받아들이며 웃고 있는 김광현의 모습은 ‘참’ 그의 빛나는 투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경기 종료 후 김광현은 “태그를 위해 연속적인 동작을 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 일부러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김광현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충분하다.
의도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더해 몸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타구가 글러브에 들어온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태그를 했다고 볼 수도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포구 이후 연속 동작으로 태그까지 가져가는 상황에서 투수가 자신의 글러브에 공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것은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다수 야구인들의 소견이었다.
사건을 지켜 본 한 야구인은 “마음이 급해 빈 글러브로 태그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공이 없었던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가 주자의 아웃 판정 이후 잠자코 들어가는 것은 너무 아쉬운 행동”이라며 김광현의 대처를 비판했다.
↑ 사진=중계 영상 캡처 |
다른 한 야구인은 “세 명의 야수가 몰려있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김광현은 자신의 태그에 의한 아웃인지 헷갈렸을 수도 있다. 곧바로 공수교대가 이루어지면서 (고백의) 타이밍을 놓쳤을 수도 있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야구를 이제 그만 둘 때가 됐다는 의견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행위는 경기 흐름을 확연하게 바꾼 외부 변수가 됐다. 거기에 기만의 성격이 짙다는 점에서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기대했던 팬들은 김광현과 피가로의 명품 투수전을 지켜보고도 쓴 입맛을 다시고 있다.
실제로도 삼성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경기였다. 선취점을 낼 수 있었던 상황에서 1점을 내지 못한 것은 물론 추가 공격 기회까지 빼앗기고 8회 2사까지 김광현에게 끌려갔다. 연장 11회 접전 끝에 김재현의 끝내기 안타로 웃었으나 힘을 너무 뺐다. 삼
김광현이 SK와 KBO리그에서 갖고 있는 위치. 그의 어깨에 놓여있는 ‘한국 최고의 좌완’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불필요하고, 아쉬운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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