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돌아보면 지난겨울 일본 전훈캠프에서 처음 알프레도 피가로(31·삼성)를 봤을 때 그렇게까지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이 몹시 빠른 위력적인 파워피처임은 분명했으나, 당연히 비교해야 했던 릭 밴덴헐크(30) 만한 안정적인 제구력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추 시즌의 3분의2를 돌파한 지금, 피가로가 보여주고 있는 위력적인 퍼포먼스와 꾸준한 팀 공헌도는 지난해의 평균자책점 1위 투수 밴덴헐크를 능가하고 있다.
↑ 삼성 피가로가 2일 잠실 두산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완투패였지만 리그 최다인 올시즌 11번째 퀄리티스타트플러스를 기록한 경기였다. 사진(잠실)=천정환 기자 |
피가로의 투구폼은 독특한 리듬감을 갖고 있다. 와인드업 구간에서 다리를 들어 올리는 속도는 느린 편이고 스트라이드가 이루어지는 얼리코킹 구간에서의 백스윙은 궤적이 크면서도 빠른 편이다. 다리를 빨리 들어 올리고 백스윙을 천천히 하는 편인 보통의 국내 투수들과는 살짝 타이밍이 달라서 까다로운 피처다.
피가로의 주무기는 상당히 조합이 좋다. 시속 150km를 웃도는 빠른 공과 뚝 떨어지는 커브를 섞는데 피가로 특유의 제구와 맞물리면서 이 조합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내고 있다.
피가로의 속구는 주로 높은 쪽에서 형성된다. 안정된 제구력으로 낮게 낮게 공략하는 피처가 아니어서 파워 넘치는 속구가 둥둥 뜨는 타입인데, 이렇게 하이 패스트볼을 갖고 있는 투수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궤적의 커브를 섞어 던지니 타자들이 자꾸 속는다. 배트를 쉽게 내고, 또 자주 타이밍이 맞지 않게 되면서 플라이볼이나 헛스윙의 결과가 많이 나온다. 높은 속구와 커브볼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습이다.
이 부분에서 밴덴헐크를 떠올려 보면, 그는 상당히 제구력이 뛰어난 피처였다. 코너워크에 집중하는 승부를 펼치면서 기본적으로 기복 없는 피칭을 했지만, 투구수는 적게 관리되기 쉽지 않았다. 반면 피가로는 제구력의 안정감은 덜하지만 타자들이 배트를 많이 내는 하이 패스트볼+커브볼의 조합으로 빠른 승부를 펼치면서 ‘이닝이터’로서는 오히려 더 위력적인 결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피가로는 공 하나 하나를 볼 때 보다, 오래 봤을 때 더 좋은 피처다. 부분 부분을 볼 때 보다 동작, 타이밍, 주무기의 조합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더 강력한 투수임을 느끼게 된다.
메이저 커리어를 살펴보니 실력만큼 크게 운이 따랐던 투수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겸허함과 진실함이 느껴지는 전력 피칭으로 한국에서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피가로는 2일 잠실 두산전에서 8회까지 153km의 구속을 스피드건에 찍으면서 완투패를 기록했다. 패전에서도 감탄하게 하는 위력, 그는 지금 선두 삼성의 에이스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