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7년차의 178cm 단신 가드 정재홍(29·오리온스)은 주목받던 선수가 아니다.
정재홍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 6순위로 오리온스에 입단해 2013년 전자랜드로 이적한 뒤 올해 친정으로 돌아왔다. 가드의 산실인 송도중·고를 거쳐 동국대를 졸업한 정재홍은 프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닌 백업가드에 불과했다.
그랬던 정재홍이 180도 달라졌다. 놀라운 변화다.
↑ 지난 22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2015 KCC 프로-아마농구 최강전 고양 오리온스와 고려대의 결승전에서 오리온스 정재홍이 고려대 이동엽의 수비를 피해 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
단 몇 경기에서 탄성을 수차례 쏟게 만든 화려한 개인기술 때문이다.
정재홍은 안정적인 드리블을 넘어 현란한 개인기를 실전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수비수 한 두 명은 가볍게 따돌리는 드리블 스킬은 물론 더블클러치와 패스 등 전반적인 스킬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무리한 동작의 오버 페이스도 없었다. 정재홍의 스킬은 화려하면서도 간결했다. 마치 NBA 선수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리듬감이 느껴질 정도. 스텝과 페이크 동작까지 국내 선수들에게서 볼 수 없는 흥이었다.
단순한 흉내가 아닌 ‘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오는 자신감이다.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은 “요즘 정재홍을 보면 농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상대 수비가 있으면 더 재밌어 하는 것 같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다”라고 말했다.
정재홍의 변신 비결은 자신에 대한 투자와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정재홍은 지난 6월 사비를 들여 미국으로 건너가 NBA 선수들이 오프시즌 받는 스킬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2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봉 9000만원짜리 선수가 무려 2500만원 이상의 큰 금액을 자신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했다.
사실 정재홍의 노력은 그 이전부터였다. ‘힙훕퍼’로 유명한 안희욱씨를 찾아갔다. 안희욱씨는 현재 일반인은 물론 농구 유망주를 비롯해 엘리트 선수들의 스킬트레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로농구 베테랑 가드가 비농구인 출신의 스킬트레이너를 찾아가거나 미국으로 사비 연수를 떠나는 경우는 국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사례다. NBA 톱클래스 선수들도 사비를 들여 꾸준히 스킬트레이닝을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갖고 있는 리그가 KBL이다.
정재홍의 변신을 위한 도전. 이유는 하나였다. 농구를 못해서다. “너 왜 이렇게 농구를 못하냐”는 어머니의 핀잔이 그를 움직였다.
프로농구는 출범 이래 최악의 위기다. 꾸준한 인기 하락세에 불법 스포츠 도박까지 줄줄이 터졌다. 프로농구의 질적 하락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프로농구가 등 돌린 팬심을 되돌리기 위해선 재밌고 멋진 경기를 선사하는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까.
이번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드러난 프로 선수들의 현실은 참담했다. 외국인선수에 길들여진 자화상이었다. 주축 선수 몇 명만 빠져도 대학 팀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무늬만 프로일 뿐 개인 기량은 대학 선수들보다 못했다. 창의성의 상실에서 오는 획일적인 조직농구는 프로농구의 흥행을 좀 먹고 있다.
프로 선수들의 의식 개혁 문제만은 아니다. 구단과 코칭스태프 전체의 각성이 필요하다.
외국인선수들이 KBL에 입성해 처음 당황하는 것이 너무 많은 팀 운동량이다. 과거 엘리트 체육의 유산이다. 오리온스 단신 외국인선수 조 잭슨은 “하루에 두 탕 세 탕 하는 연습이 가장 힘들다”고 난색을 표했다.
프로 선수들은 자신을 위해 투자할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개인기보다는 전술의 패턴만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프로 선수들의 자아발전 시간은 시스템적으로 차단이 돼 있는 셈이다.
사회인 농구
정재홍을 보고 느껴라. 정재홍의 변신이 전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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