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마운드 위에서 잡념을 버리는 것은 좋은 투수가 되는 중요한 덕목이다.
5년 전 작고한 법정스님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을 쓴 수필집 ‘무소유’에서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롯데 자이언츠 베테랑 좌완투수 강영식(34)은 올 시즌 막바지 많은 것을 버렸다. 지난해까지 마운드에서 예민했던 성격도 사라졌다. 마무리 정대현과 셋업맨 이성민과 함께 강영식이 든든히 뒷문을 지키며 한 때 ‘롯데시네마’로 불렸던 악몽의 불펜 극장판도 없어졌다. 롯데도 어느새 경쟁을 뚫고 5위에 자리를 잡았다.
↑ 요즘 롯데 자이언츠 투수 강영식은 마음을 비우고 마운드에 선다. 사진=MK스포츠 DB |
강영식의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일 사직 삼성 라이온즈전이었다. 강영식은 4-3, 1점차 승부인 9회말 1사 후 정대현에 이어 마무리로 깜짝 등판해 퍼펙트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켰다.
이날 강영식의 등판이 자신도 몰랐던 깜짝 카드였다는 점에서 가치는 더 빛났다. “6회부터 나가려고 몸을 풀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성민이가 깔끔하게 막고 (정)대현이 형이 나가서 ‘내 역할은 끝났구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간다’라고 해서 나가 던졌다.” 그 결과는 올 시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불펜의 힘이었다.
그런데도 강영식은 자신이 한 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대륙이 수비가 좋았다. 너무 고마워 필요한 건 다 사줘야겠다. (강)민호의 리드가 좋았다. 난 그냥 던진 것밖에 없다.” 강영식은 든든해진 불펜에 대해서도 이성민과 정대현을 치켜세울 뿐이었다.
강영식이 달라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무소유’의 깨달음이다. “요즘은 예민한 것이 없다. 마운드에서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어오려고 하면 그 전에 공을 던져버린다.(웃음) 요즘에는 내 공이 안 좋으면 그냥 안 좋다는 것을 인정해 버린다.” 이어 그는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며 껄껄 웃었다.
롯데의 불펜이 강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진 효과다. 강영식은 “예전에는 역할이 정해진 것이 없어서 준비를 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지금은 안정화가 됐다. 투수들이 나갈 타이밍을 아니까 그 상황에 맞게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며 “운이든 실력이든 동점이나 1~2점차 승부를 지키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생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영식은 언제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그는 “몸만 되면 쉬지 않더라도 계속 던지고 싶다. 매일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빙긋이 웃어 보였다.
↑ 롯데 베테랑 좌완 강영식의 역투. 사진=MK스포츠 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