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오프 3차전)
손민한(40·NC)은 ‘파워피처’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중요한 힘을 갖고 있는 투수다.
21일 잠실 두산과의 2015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의 승리투수가 되면서 손민한은 KBO 역대 최고령 PS 선발승을 기록했다. 리그 3년차 NC를 ‘KS-1승’으로 끌어올린 역투였다.
↑ NC 손민한이 21일 잠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2로 앞선 채 5회말을 마친 뒤, 자신감에 찬 글러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잠실)=김재현 기자 |
주무기를 원하는 곳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안정적인 제구력이 첫째. 날카로운 ‘감’으로 매순간 최고의 판단과 탄력적인 볼배합을 해내는 순발력이 둘째다. 이를 뒷받침하는 그의 또 다른 힘은 통찰력이다. “딱 보면 보이는데요.” 농담 같은 진담으로 손민한은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 진짜 그는 타자의 스탠스, 움찔하는 자세, 전 타석의 전개 등으로 의도를 읽어내는데 능한 것 같다. 상대 타자에 대응하여 변화하는 ‘반응적인’ 승부수가 빼어나다.
이날 1,2회에는 속구 위주의 투구를 했다. 그러나 코너워크를 노린 공들이 거푸 볼 판정을 받은데다 두산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빠른 공을 공략해내면서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1회 2사 만루에서 두산 최주환의 잘 맞힌 타구가 2루수 직선타로 잡힌 것은 초반의 최대 행운이었다.
타선이 점수를 뽑아주면서 NC가 4-2의 리드를 잡은 3회 이후, 손민한의 볼배합은 돌변했다. 빠른 슬라이더 위주의 변화구들을 적극적으로 존 근처에 집어넣었다. 이는 앞선 두 이닝에서 소모한 투구수를 절약하면서 타자들과의 ‘수싸움’을 꼬는 두 가지 미션을 모두 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1,2회 속구 승부에 눈이 익은 타자들은 비슷한 궤적에 공격적으로 배트를 냈으나, 속구 타이밍을 살짝 살짝 비껴가는 빠른 변화구에 정타를 맞혀내기 힘들었다. 두산의 클린업 트리오를 10구 연속 ‘온리 변화구’로 삼자 범퇴시킨 5회는 손민한의 진가가 발휘된 절정의 이닝이었다.
사실 이날의 맞수였던 손민한과 유희관(두산)은 초반 양상이 비슷했다. 제구력이 강점인 투수들은 아무래도 구심의 존이 빡빡할 때 애를 먹게 되는데, 두 투수 모두 초반 코너워크를 노린 공들이 자주 볼이 됐고 들어간 공들은 상대 타자들의 배트에 맞아 나갔으니 나란히 비슷한 문제에 맞닥뜨렸던 셈이다. 그러나 해결능력은 갈렸다.
손민한은 1,2회의 승부를 ‘밑밥’으로 삼아 3회 이후 적극적인 변화구 승부로 전환하면서 두산 타자들을 낚아 올렸지만, 유희관은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잡히지 않는 코너워크에 매달리면서 내내 어려운 승부를 했다. 3회 1사에서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64개의 공을 던진 유희관은 이중 몸쪽 공이 8개뿐이었는데, 그나마 3타자에게 집중됐다. 즉 이날 맞선 13타자 가운데 10타자에게 전혀 몸쪽 승부를 하지 못했다. 코너를 노린 공들이 볼이 되면서 줄곧 불리한 볼카운트에 몰렸고, 더욱 몸쪽 승부를 힘들어하는
1군 진입 3년 만에 KS를 노리는 젊은 NC에게 베테랑 손민한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가을 곰’ 두산의 젊은 불펜들은 7회 5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결정적 승기를 내주고 말았으니, 적어도 3차전에서 만큼은 ‘관록’에서 이겼던 NC다. (SBS스포츠 프로야구 해설위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