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강대호 기자]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잘 어울리는 선수가 앞으로 한국축구에 또 나올까. 전 국가대표 공격수 이천수(34·인천 유나이티드)가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최고와 최악을 수시로 넘나들 정도로 인생사의 기복이 심했다.
■최고의 순간들
스위스와의 2006 독일월드컵 G조 3차전에서 0-2로 진 한국은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1승 1무 1패 득실차 –1 승점 4로 조별리그 탈락팀 중 최고 성적이었다. 스위스전이 끝나고 서럽게 울던 이천수를 보고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됐을까.
독일월드컵에서 이천수는 토고와의 G조 1차전(2-1승) 선제골을 넣는 등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개인능력만 빼어난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전 이천수의 눈물에 국민이 감동한 것은 패배를 돌이킬 수 없음에도 처절할 정도로 열심히 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 독일월드컵 스위스전 패배 후 서럽게 울던 이천수. 당시 범국민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사진(독일 하노버)=AFPBBNews=News1 |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천수의 헌신은 2004 아테네올림픽 본선 진출 과정에서도 있었다. 난적 이란과의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원정경기(1-0승)에 결승골을 넣어 한국을 본선으로 이끌었으나 당시 이천수는 양쪽 발목이 모두 정상이 아니라 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야 안 소속팀 레알 소시에다드 의료진이 아연실색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천수는 그나마 상태가 나았던 발로 후반 15분 득점에 성공한 후에도 16분이나 더 뛰는 등 임무를 최대한 수행한 후에야 교체되어 나왔다. 극악의 난이도로 유명한 이란 테헤란 원정 승리는 A팀을 포함한 모든 각급 대표팀에서 이천수가 속했던 올림픽대표팀이 유일하다.
울산 현대의 2006년 A3 챔피언스컵 우승 당시 이천수의 활약도 대단했다. J리그 챔피언 감바 오사카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이천수는 피로골절과 감기몸살이 겹쳐 결장이 당연했다. 그러나 교체 출전한 이천수는 해트트릭으로 울산의 6-0 대승을 주도했다. 대회 득점왕·MVP는 당연히 이천수의 몫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 순위 정상에 빛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도 바로 이천수다. 직전 시즌 준우승팀 레알 소시에다드에 2003년 7월 1일 입단 당시 이적료가 400만 유로(49억5524만 원)에 달했다.
■끊이지 않았던 사건·사고
이천수처럼 빛과 어둠이 지극히 대조적인 인생도 드물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구단 차원으로 내릴 수 있는 최고징계인 ‘임의탈퇴’를 2차례나 경험했다. 수원 삼성에서 임대 선수 신분이었던 2008년 코치진에 대한 항명도 모자라 동갑내기 동료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이며 1번째 임의탈퇴를 당했다.
↑ 2012년 11월 전남드래곤즈 홈구장을 찾아 팬들에게 사죄하던 이천수. 사진=MK스포츠 DB |
당시 이천수는 네덜란드 1부리그 페예노르트가 원소속팀이었다. 수원에서 쫓겨나 전남 드래곤즈로 재임대됐으나 계약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는 와중에 경기장에서는 심판, 밖에서는 코치진과 좌충우돌하면서 2009년 7월 임의탈퇴가 공시됐다.
‘이천수가 누구랑 시비가 붙었다’는 얘기는 ‘카더라’까지 포함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나왔다. 술집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입건이나 피소당한 것만 3번이다. 특히 2007년 말 술집 여성을 때렸다가 고소인 취하로 종결됐던 사건과 거짓 해명으로 더욱 물
기량만 따져도 부를 누릴만한 이천수였으나 금전적인 손해도 많이 봤다. 페예노르트 입단계약금 전액을 사기로 모두 잃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1부리그 알나스르에서는 받지 못한 급여가 8억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dogma0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